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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히잡만 써도 된다”는 탈레반 약속, 믿을 수 있나

등록 2021-08-25 08:21수정 2021-08-25 09:51

탈레반 연일 “여성 활동 보장” 밝혀
현실에서는 상반되는 사례들 발생
“20년 지나…달라질 수 있다” 전망도
23일 인도 뉴델리에서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이 아프간 여성 인권에 대한 국제사회의 도움을 호소하는 팻말을 들고 있다. 뉴델리/로이터 연합뉴스
23일 인도 뉴델리에서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이 아프간 여성 인권에 대한 국제사회의 도움을 호소하는 팻말을 들고 있다. 뉴델리/로이터 연합뉴스

지난 17일 아프가니스탄의 텔레비전 방송인 <톨로 뉴스>의 여성앵커 베헤슈타 아르간드가 스튜디오에서 탈레반 미디어팀 간부 몰로이 압둘하크 헤마드와 마주 앉았다. 아르간드는 머리만 덮는 히잡을 쓰고 얼굴은 가리지 않은 채 헤마드를 인터뷰했다. 이틀 뒤인 19일 <아프가니스탄 라디오 텔레비전>(RTA)의 여성앵커 샤브남 도란은 방송국에 도착해 출입증을 보여줬지만 들어가지 못했다. 대신 그는 “시스템이 바뀌었다. 이제 일할 수 없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 남자 직원들은 출입이 허용됐다.

아프간 여성들, 기대·공포 교차

탈레반이 아프간을 20년 만에 다시 점령하면서, 특히 여성 인권에 대한 우려가 크게 제기된다. 1996~2001년 집권 시절, 여성의 교육과 취업 등을 전면 금지했던 탈레반의 비이성적 정책이 재연될 수 있기 때문이다. 탈레반은 지난 15일 카불에 입성하면서 ‘여성들도 하던 일을 계속 하라’는 취지의 명령을 내려 기대를 키웠지만, 현실에서 반대되는 사례가 종종 나타나면서 공포가 교차하고 있다.

아직 아프간의 권력 체계를 확정 짓지 못한 탈레반은 여성 인권에 대해서도 다소 모호한 입장을 내놓고 있다. 지난 17일 자비훌라 무자히드 탈레반 대변인은 수도 카불에서 진행한 첫 기자회견에서 “여성들은 사회에서 적극 활동하게 될 것이지만, 이는 이슬람 틀 안에서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 여성의 사회 활동을 완전히 차단했던 것과 견주면 엄청난 변화이지만, 이슬람 틀 안이라는 조건을 떼지 않았다. 이슬람 율법, 즉 ‘샤리아’를 통해 판단하겠다는 것이다.

이슬람 율법 해석, 국가마다 달라

아랍어로 ‘길’이라는 뜻을 가진 ‘샤리아’는 이슬람 경전 꾸란과 예언자 무함마드의 말과 행동을 바탕으로 한 광범위한 도덕·윤리적 원칙을 뜻한다. 이에 대한 해석은 지역, 학자마다 다르다. 카타르에 본사를 둔 <알자지라>는 “많은 국가들이 이슬람 율법에 대한 해석을 기반으로 법률을 정하지만, 동일한 법률을 가진 국가는 없다”고 전했다. 얼마 전까지 아프간을 통치한 아슈라프 가니 정부도 이슬람 율법을 지지하는 입장을 취했지만, 과거 탈레반의 법률과는 완전히 달랐다.

23일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서 눈까지 가린 부르카를 쓴 여성들(왼쪽)이 시장에서 장을 보고 있다. 다른 여성(오른쪽)은 머리만 덮는 히잡을 쓴 것으로 보인다. 카불/AFP 연합뉴스
23일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서 눈까지 가린 부르카를 쓴 여성들(왼쪽)이 시장에서 장을 보고 있다. 다른 여성(오른쪽)은 머리만 덮는 히잡을 쓴 것으로 보인다. 카불/AFP 연합뉴스

탈레반은 인도에서 비롯한 이슬람 복고주의 운동인 데오반디즘과 본인들이 속한 종족인 파슈툰족의 오랜 관습인 파슈툰왈리를 기반으로 이슬람 율법을 해석하는 것으로 학자들은 본다. 문제는 이런 해석이 여성을 남성의 소유물로 규정하고 부수적인 존재로 여긴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1990년대 후반 아프간 여성들은 온 몸을 가리는 부르카를 쓰고 남성과 동행해야 외출할 수 있었고, 교육 기회와 공적인 자리에서 배제됐다. 여성은 아이를 낳고 남성에 복종하고 가사에 전념해야 했다. 시아파 주민과 함께 아프간 여성들은 탈레반 통치의 최대 피해자였다.

“20년 지나, 탈레반 변하지 않을 수 없어”

‘이번엔 다르다’는 탈레반의 주장을 얼마나 믿을 수 있을까? 수하일 샤힌 탈레반 대변인은 23일 영국 <스카이 뉴스>와 인터뷰에서 “히잡을 쓰지 않았다면 히잡을 써야 하며 여성이 히잡을 쓴다면 당신 나라에서 누리는 것과 같은 권리를 가질 것”이라고 말했다. 온몸을 보이지 않도록 덮는 부르카 대신 머리 정도를 덮는 히잡으로 대신하겠다는 뜻이다. 그는 “이제, 여성 교사들이 업무를 재개했다. 아무것도 잃어버리지 않았다. 여성 기자들이 업무를 재개했다. 아무것도 잃은 게 없다”라고 말했다.

아프간 여성들은 아직 탈레반을 믿지 않는 분위기다. 일부 탈레반 조직원들이 여성들을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막거나 부르카를 쓰지 않은 여성이 폭행을 당했거나 살해됐다는 소식들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올라오기도 한다. <아프가니스탄 라디오 텔레비전>(RTA)의 여성 앵커 메르 무살 아미리는 영국 <데일리 메일>과 인터뷰에서 “TV에서 수염을 기른 남자들이 종교와 샤리아법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여성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며 “모든 것이 변했고 더 나빠졌다. 민주주의는 끝났고 아프간 여성들의 미래는 특히 어둡다”고 말했다.

탈레반이 변할 것이라는 주장도 조심스레 제기된다. 탈레반이 20년 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환경에서 아프간을 통치해야 해, 스스로 변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아프간 분석가인 아흐메드 왈리드 카카는 “이슬람 율법에 대한 해석은 1990년대와 동일하게 유지될 수 있지만, 상황이 바뀐 만큼 법적 판단과 접근 방식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탈레반이 두 번째 집권을 맞은 만큼 과거 국제사회에서의 고립을 초래한 여성 인권 탄압을 그대로 반복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케임브리지 대학 이슬람연구센터의 하 헬리어는 “탈레반이 샤리아를 어떻게 적용할지 한동안 명확하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완전히 새로운 상황이 된 만큼 달라질 것”이라고 <알자지라>에 말했다. 최현준 기자 hao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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