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이 지구를 ‘살 만한’ 공간으로 만들기 위한 미래 정상회담 개최 방안을 담은 보고서를 내놨다. 지난 7월 유럽연합(EU)를 방문해 발언하고 있는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 브뤼셀/AP 연합뉴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세계가 거의 모든 분야에서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면서 전세계의 질서가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며 인류의 미래를 논의할 정상회담을 열자고 제안했다.
구테흐스 총장은 10일(현지시각) ‘우리의 공동 의제’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세계가 거의 모든 분야에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며 긴급한 대응을 촉구했다고 <에이피>(AP) 통신이 11일 전했다. 그는 “코로나19 대유행은 생명을 위협하는 긴급 사태에 세계가 제대로 공동 대응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사건”이라고 지적했다.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이런 ‘마비 상태’는 기후 변화, 자연에 대한 ‘자살적 공격’과 생물 다양성 파괴, 사회 통합을 해치는 불평등 등에 대한 무기력한 대응에서도 확인된다고 말했다. 그는 빈곤과 기아 증가, 핵전쟁 위험, “음모론과 거짓말들이 사회 분열을 재촉하는 가운데” 벌어지는 불의에 대한 대중들의 항의 시위 등도 무기력의 징후로 거론했다.
‘우리의 공동 의제’ 보고서는 지구를 모든 사람이 평화롭고 건강하게 ‘살 만한’ 공간으로 만들 ‘미래를 위한 정상회담’을 2023년 열자고 제안했다. 보고서는 이 정상회담에서는 해양 등 지구 자원 보존이나 디지털 기술과 우주 공간에 대한 공동 관리·통치 등 전통적인 안보 문제를 넘는 쟁점들도 다뤄야 한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지난해 유엔 총회가 유엔 설립 75주년을 맞아 제안함에 따라 준비된 것이다.
보고서는 또 핵무기, 사이버 전쟁, 치명적인 자동(무인) 무기들이 야기하는 전략적 위험을 줄이기 위한 논의를 ‘평화를 위한 새로운 의제’로 제시했다. 이런 문제의 거대 흐름과 위험을 정기적으로 평가해 보고하기 위해 ‘유엔 미래 연구실’을 새로 만들 것이라고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밝혔다.
보고서는 주요 20개국(G20), 유엔 경제사회이사회,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 기구들이 참여해 ‘지속 가능하고 포용적인 국제 경제’를 위한 정상회담을 2년에 한번씩 여는 방안도 제시했다.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현재의 국내총생산(GDP)이 이익 추구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회·환경적 피해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며 이런 문제를 보완한 경제 성장 지표를 만들자는 제안도 보고서에 담았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전세계적인 위기가 발생할 때 자동으로 구성되는 ‘비상 플랫폼’ 구축 방안도 내놨다. 이 플랫폼은 각국 정부, 유엔, 국제 기구, 시민사회, 민간 부문이 모두 참여하는 형태로 제안됐다. 이밖에 미래 세대 문제에 집중하기 위한 유엔 특사 임명과 ‘유엔 청년 사무소’ 설립 제안도 담고 있다.
구테흐스 총장은 “우리는 역사의 변곡점에 있다”며 “이번 보고서는 소수의 단기적인 이익이 아니라 다수의 생명과 복지를 소중히 여기는 새로운 기준점 마련을 촉구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신기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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