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을 억압하는 나라일수록 정치적 불안도 심하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를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여성들이 온 몸을 가린 부르카를 입은 채 걷고 있다. 카불/AFP 연합뉴스
여성을 억압하는 나라가 더 가난하고 정치적으로 불안정하며, 남수단, (탈레반 이전) 아프가니스탄, 예멘 등이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라는 분석이 나왔다.
영국 주간 <이코노미스트>는 11일 미국 텍사스 에이앤드엠(A&M) 대학과 브리검영 대학 연구팀이 ‘부계/형제 증후군’ 지수를 만들어 전세계 176개 국가를 0부터 16점까지 분류했다며 남수단이 최고점인 16점으로 평가됐다고 전했다. 탈레반 집권 이전의 아프간·이라크·예멘·나이지리아는 15점으로 평가됐다. ‘부계/형제 증후군’ 지수는 가족법과 재산권에 있어서 여성 차별, 여성의 조기 결혼 관행, 일부다처제 여부, 남아 선호, 여성에 대한 폭력과 이에 대한 사회적 인식 등을 점수화한 것이다.
이 평가에서 오스트레일리아·스웨덴·스위스는 0점을 받아 여성 억압이 거의 없는 나라로 꼽혔다. 미국은 1점, 한국은 6점으로 나타났으며, 중국은 9점, 사우디아라비아·인도는 14점을 받았다.
이 지수를 미국 비영리단체 평화기금이 발표한 2021년 ‘취약국가지수’(FSI)와 비교해 보면, 여성을 억압할수록 국가가 불안정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이코노미스트>가 지적했다. 오스트레일리아·스웨덴·스위스는 취약국가지수에서도 각각 21.8점, 21.4점, 19.9점을 기록해 정치적 안정성이 높은 나라에 속했다. 미국은 이 지수에서 44.6점으로 여성 억압 지수에 비해 정치적 안정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진 반면, 한국은 32.5점으로 여성 억압에 비해 정치적 안정성이 상대적으로 양호했다. 여성 억압 지수에서 최악의 평가를 받은 남수단(109.4)·아프가니스탄(102.1)·예멘(111.7)·이라크(96.2)·나이지리아(98.0)는 정치적 안정성도 취약했다.
연구진은 여성 억압이 정치적 불안의 원인이라고 증명할 수는 없었지만, 강력한 통계적 연관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코노미스트>는 여성 억압 정도가 소득, 도시화, 정부 건전성보다는 정치적 불안정을 훨씬 더 잘 예측하는 지표로 분석됐다고 전했다. 잡지는 “예컨대, 여아 낙태로 성비가 왜곡되면 남성들이 결혼을 못할 거라는 두려움을 느끼고, 이는 범죄를 저지르거나 반군에 가담할 여지를 높일 수 있다”는 예를 들었다. 연구진은 여성 억압이 빈곤을 잘 설명하는 지표라는 점도 확인했다. 연구진은 “한 나라를 저주하는 가장 확신할 수 있는 방법은 여성을 경시하는 것일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
신기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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