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가스 가격이 급등하면서 유럽연합의 탄소 배출 감소 방안이 저소득층에 끼칠 악영향을 줄일 대책 요구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액화석유가스 수송선이 영국의 한 항구에 정박해 있다. 밀퍼드헤이번/로이터 연합뉴스
유럽에서 천연가스 가격이 급등하고 이에 따라 전기 요금까지 들썩이자 유럽연합(EU)의 야심찬 탄소배출 감소 방안에 대한 반발이 커지고 있다. 특히, 난방과 휘발유 등에 대한 탄소세 부과 계획이 빈곤층의 어려움을 가중시킬 것이라는 지적이 힘을 얻고 있다.
유럽연합 회원국 에너지 장관들은 22일(현지시각) 최근의 에너지 가격 급등에 대응할 긴급 지원 문제를 논의했다고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 타임스>가 전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유류에 대한 수입 관세 인하 등 에너지 가격 안정책도 논의됐다.
세계 경제가 코로나19 충격에서 차츰 벗어나면서 천연가스 수요가 늘고 있지만 공급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유럽의 가스 가격은 올해 초에 비해 250%나 상승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미국과 아시아의 가스 가격도 올해 초에 비해 거의 2배 가까이 올랐다. 가스 가격 상승은 가스를 원료로 쓰는 발전소들의 비용 증가를 부르면서, 각국에서 전기 요금 상승도 촉발하고 있다고 통신은 전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이날 이례적으로 러시아에 유럽에 대한 가스 공급 확대를 촉구했다. 유럽의 최대 천연가스 공급 국가인 러시아는 유럽에 대한 기존 공급 계약을 예정대로 이행하고 있으나, 추가 공급 요구에는 아직 응하지 않고 있다.
에너지 가격 상승세가 심상치 않자, 프랑스는 지난주 저소득층 600만 가구에 100유로(약 13만8천원)씩을 지원하는 계획을 발표했고 이탈리아 등도 비슷한 지원책을 준비하고 있다. 영국은 에너지 기업들에 자금을 긴급 대출해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가스 가격 폭등의 여파는 유럽연합이 지난 7월14일 발표한 탄소 배출 감소 계획에까지 미치고 있다고 <파이낸셜 타임스>는 지적했다. 이 계획은 2050년까지 탄소 순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탄소 중립’을 실현하기 위한 것인데, 특히 논란이 되는 부분은 건물 난방과 교통 분야도 탄소 배출권 거래제 대상에 포함시키는 내용이다. 이 제도가 적용될 경우, 휘발유 등의 유류에 1톤당 50유로(약 6만9천원)의 탄소세가 부과될 것으로 유럽연합은 추산하고 있다.
파스칼 캉팽 유럽의회 환경위원회 위원장은 “탄소 배출권 거래 확대 필요성을 납득하기 어렵다”며 2018년 유류세 인상에 반발해 프랑스에서 벌어졌던 대규모 항의 시위 같은 사태를 막을 조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저소득층 대책의 필요성은 일부 환경 단체나 몇몇 국가의 녹색당들도 공감하고 있다고 <파이낸셜 타임스>는 전했다.
캉팽 위원장은 난방에 대한 탄소세는 상업 건물에만 적용하고, 유류에 대한 탄소세 대신 자동차 업계에 대한 배출가스 규제를 강화하는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교통 분야의 탄소 배출을 줄이는 유일한 방안이 탄소 배출권 거래제라며 애초 발표안의 대규모 수정에 반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유럽연합이 탄소 배출 감소 방안을 확정하기까지 앞으로 몇달 동안 논란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신기섭 선임기자
marish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