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등으로부터 퇴진 압박을 받고 있는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세계은행 재직 시절 중국을 위해 자료를 조작했다는 의혹에 휩싸인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 거취를 놓고 미국과 유럽이 마찰을 빚고 있다.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 타임스>는 국제통화기금의 24개 이사국들이 최근 잇따라 게오르기에바 총재 거취 문제를 논의했으나 의견이 둘로 나뉘면서 결론을 내지 못했다고 10일(현지시각) 보도했다. 미국과 일본 등은 게오르기에바 총재가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영국 등은 그를 지지하고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이사국들은 자료 조작 관련 보고서를 작성한 미국 법무법인 윌머헤일 관계자와 게오르기에바 총재를 잇따라 접촉한 뒤 이날 밤 늦게 발표한 성명에서 상황 평가에 대한 “상당한 진전을 이뤘다”며 조만간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만 밝혔다. 국제통화기금은 11일 세계은행과의 합동 연차 총회를 앞두고 있다.
월머헤일은 2017년 당시 김용 세계은행 총재의 측근과 게오르기에바 세계은행 최고경영자 및 그의 측근들이 ‘2018 기업 경영 환경 보고서’에서 중국의 순위를 높이려고 부적절한 압력을 행사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최근 내놨다. 이 보고서는 세계은행 윤리위원회의 의뢰로 작성돼 지난달 16일 공개됐다. 이에 대해 게오르기에바 총재는 잘못된 주장이라고 혐의를 전면 부정하고 있다.
그의 퇴진을 요구하는 쪽에서는, 의혹만으로도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이 개혁을 추진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고 주장한다. 반면, 그를 옹호하는 쪽에서는 그가 코로나19 대유행 와중에 이룬 성과를 강조하고 있다. 가난한 나라들에 대한 지원, 기후 변화와 성평등 같은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우선 과제 재정립 등이 그의 성과로 꼽힌다. 이런 사정 때문에 아프리카 국가들도 공개적으로 게오르기에바 총재 지지를 선언한 바 있다.
진보적인 경제학자들도 게오르기에바 총재를 옹호하고 나섰다. 미국 경제학자 제프리 삭스는 지난달 이 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그의 퇴진은 반 중국 히스테리에 굴복하는 것이며 이는 위험하고 대가도 클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도 최근 쓴 글에서 윌머헤일의 보고서를 “(고의적인) 악평”으로 평가하고, 게오르기에바 총재 퇴진 요구를 “쿠데타 시도”로 묘사했다.
일부에서는 게오르기에바 총재의 운명이 그의 성과나 국제 기구의 신뢰성 측면에 대한 고려보다는 지정학에 따라 결정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계속 되는 가운데 미국·영국·오스트레일리아의 안보협력체(오커스)를 둘러싼 프랑스 등의 반발 등 최근의 국제 정세 흐름이 그의 운명을 좌우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신기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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