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타이 당국이 방콕 근교의 한 창고를 급습했을 때 적발한, 더러운 중고 니트릴 장갑들이 통에 잔뜩 담겨있는 모습. <시엔엔>(CNN) 누리집 갈무리.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개인보호장비 수요 급증을 틈타, 중고 의료용 장갑이 새것으로 둔갑해 미국으로 대량 수입됐다고 <시엔엔>(CNN)이 24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이 매체는 수입 기록과 미국 내 배급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수천만개의 위조·중고 니트릴 장갑이 타이(태국)에서 미국으로 유입됐다고 보도했다. 니트릴은 라텍스, 비닐과 함께 일회용 장갑의 대표적 소재 중 하나다.
지난해 코로나19가 전세계로 퍼지면서 마스크 등 개인보호장비 수요가 폭증하면서 니트릴 장갑도 구하기 힘들어졌다. 이 장갑은 천연 고무를 소재로 하는 제품의 특성상, 동남아 지역에서 대부분 생산된다. 미 식품의약국(FDA)은 개인보호장비 조달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수입 규제를 한시적으로 유예했는데, 이로 인해 위조·중고가 버젓이 새것처럼 뒤바뀌어 미국에 더 쉽게 유입됐다고 이 매체는 전했다.
사업가인 타렉 커센은 지난 연말 ‘패디 더 룸’이라는 타이 회사에서 200만달러 어치의 장갑을 주문해 미국 내에 판매했다가 구매자들로부터 “당신 때문에 우리 망했다”는 항의를 받았다. 그가 마이애미 항구에 가서 타이에서 온 두번째 컨테이너를 열어보니 이미 사용된 장갑들이었다. 그는 “씻어서 재활용된 장갑들이었다. 일부는 더러웠고, 핏자국도 있었으며, 2년 전 날짜 표시가 있는 것도 있었다. 내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커센은 국내 고객들에게 환불해주고 식품의약국에 신고했다.
역시 이 업체에 속아 270만달러 어치를 주문했던 루이스 지스킨은 “이런 회사들이 블랙리스트에 안 올라있다는 게 충격적”이라고 말했다.
<시엔엔>은 수입 기록을 보면 팬데믹 기간 동안 미국 업체들이 타이의 이 회사에서 약 2억장의 니트릴 장갑을 사들였다고 전했다. 미국의 한 회사는 베트남 업체로부터 빛깔이 서로 다르거나 찢어지는 등 중고 장갑을 받았다고 밝혔다. 장갑 판매 업체들은 안전한 것처럼 품질 증명서를 첨부했으나, 이 또한 위조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장갑들이 미국 항구에 도착한 뒤 어떻게 됐는지는 불분명하며, 최종 목적지에 닿기 전까지는 위조 여부를 알기 어렵다고 이 매체는 덧붙였다.
미 식품의약국은 지난 8월 미국의 항만들에 타이의 ‘패디 더 룸’에서 오는 물건은 압류하고 있으라고 지시했다. 국토안보부 또한 이 업체를 조사중이라고 밝혔다. 타이 당국도 지난해 12월 해당 업체를 급습하고, 이 사안을 조사중이다.
하지만 <시엔엔>은 기준 미달의 니트릴 장갑이 몇만장이나 더 미국 항구의 창고들에 쌓여있을지 알 수 없다고 지적했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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