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도가 높은 날씨가 자살 위험을 높을 수 있다는 연구가 나왔다. 폭우 속에서 우산을 쓰고 걷는 사람들. EPA 연합뉴스
세계 60개국의 38년치 기후 자료와 자살률을 분석한 결과, 습도가 높은 날씨가 자살 증가를 부를 수 있으며 특히 여성과 청소년들에 끼치는 영향이 뚜렷하다는 연구가 나왔다.
기후 변화에 따라 늘어난 이상 고온 현상이 사망 증가 등 건강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경고는 많이 제기됐으나, 습도가 정신 건강에 끼치는 영향에 대한 대규모 연구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15일(현지시각) 전했다.
영국의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 스위스 제네바대학 등의 연구팀은 이날 국제 학술지 ‘네이처 사이언티픽 리포츠’를 통해 발표한 논문에서 습도가 높은 날씨가 잦으면 자살이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증가한다는 분석을 내놨다. 자살 위험에는 이상 고온보다 습도의 영향이 훨씬 뚜렷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1979년부터 2016년까지 세계 60개국의 자살 통계와 기온·습도 자료를 분석했다. 연구 대상 지역은 유럽, 중남미, 아프리카 등이었으며 아시아에서는 타이, 일본 등이 포함됐다. 습도가 높아질 때 자살이 유의미하게 증가한 나라로는 남미의 가이아나, 아시아의 브루나이와 타이, 유럽의 러시아와 스페인, 스웨덴 등 12개 나라가 꼽혔다. 습도가 높은 열대 지역뿐 아니라 기온이 상대적으로 온화한 유럽에서도 비슷한 영향이 나타난 것이다.
연구팀은 습도와 자살의 관계는 남성보다 여성에게서 더 뚜렷했다고 설명했다. 대기 중 습도가 일정 수준 상승할 때 자살 위험이 높아진 나라의 평균치를 보면, 남성의 자살 위험은 4.3% 증가한 반면 여성의 경우는 5.3% 늘었다. 연령별로 보면, 5~14살과 55살 이상자에서 습도가 자살에 끼치는 영향이 더 컸다고 연구팀은 지적했다.
공동 연구자인 영국 서섹스대학의 소냐 아예브칼손 연구원은 “습도는 인체의 체온 조절 기능을 저하시키며 이는 정신 건강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의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고 <가디언>에 밝혔다. 그는 또 “정신 건강은 불안감 등 여러가지와 관련되지만, 수면 부족은 특히 중요하며 높은 습도는 수면을 방해한다”고 설명했다. 여성과 청소년이 더 큰 타격을 받는 것과 관련해 아예브칼손 연구원은 “사회 구조와 권력 관계 때문에 극단적인 기후 변화가 여성과 청소년에게 더 큰 고통을 준다”고 지적했다.
한편, 미국 캘리포니아공대 등의 국제 연구팀은 지난해 5월 발표한 논문에서 치명적일만큼 높은 습도와 이상 고온 현상이 1979년에 비교해 2017년에 전세계적으로 두배 이상 늘었다고 밝힌 바 있다.
신기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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