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현지시각) 치러진 칠레 대선 1차 투표에서 1위를 차지한 극우 성향의 호세 안토니오 카스트 후보가 지지자들 앞에서 승리 표시를 하고 있다. 산티아고/EPA 연합뉴스
2019년 경제 불평등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 이후 정치적 격변기를 겪는 가운데 실시된 칠레 대통령 선거 1차 투표에서 극우 성향 후보가 1위를 기록했다.
21일(현지시각) 치러진 칠레 대선 1차 투표 개표 결과, 공화당의 호세 안토니오 카스트 후보가 27.91%를 득표해 1위를 차지했다고 <로이터> 통신 등이 22일 보도했다. 2위는 25.83%를 득표한 좌파 후보 가브리엘 보리치 후보였다. 과반 득표자가 나오지 않음에 따라 두 후보는 12월19일 결선 투표를 치르게 된다. 결선 투표는 좌우파 세력의 전면 대결 구도로 진행될 전망이다.
과거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군사독재 정권을 지지했던 경력이 있는 카스트 후보는 이번 결선 투표를 이념 대결 구조로 가져가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드러냈다. 그는 21일 밤 지지자들에게 결선 투표는 공산주의와 자유 가운데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가 달린 투표라고 주장했다고 <에이피>(AP) 통신이 전했다. 그는 또 보리치 후보가 공산당의 꼭두각시에 불과하다고 공격하며 “우리는 베네수엘라와 쿠바가 걸은 길을 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학생운동 출신이자 35살의 젊은 정치인인 보리치 후보는 카스트 후보를 직접 거론하지 않은 채 선거 결과를 겸허하게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의 임무는 우리가 더 공정한 나라로 가는 최선의 길을 제시한다고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칠레에서는 2019년 10월 지하철 요금 인상을 계기로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불만이 폭발해 대규모 시위가 벌어진 이후 정치가 격변을 겪고 있다. 지난해 국민투표에서는 피노체트 군사독재 시절 제정된 헌법 폐기가 78%의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 올해 실시된 제헌의회 선거에서도 좌파 후보들이 강세를 보였다. 이에 따라 좌파 세력의 집권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망됐다.
칠레 대선 1차 투표에서 2위를 차지한 가브리엘 보리치 후보가 지지자들에게 연설하고 있다. 산티아고/로이터 연합뉴스
이런 상황에서 실시된 선거 결과는, 좌파 강세의 정치 지형이 일정 부분 다시 우파 쪽으로 기우는 흐름을 보여주는 것으로 분석된다. 선거 분석가들은, 범죄 증가에 대한 불안감, 계속되는 시위에 대한 피로감, 남부 지역 원주민 마푸체족과 경찰의 지속적인 충돌 등을 우파 지지층 증가 요인으로 꼽았다고 <로이터>가 전했다. 미겔 앙헬 로페스 칠레대학 교수는 “남부 지역 상황, 어떤 모습일지 모르겠는 변화 기류 등에 대한 우려가 상당수 유권자로 하여금 보리치 후보에게 등을 돌리게 했다”고 지적했다.
우파의 부활 조짐은 자유주의 경제학자 프랑코 파리시가 12.8% 득표로 3위를 차지한 데서도 감지된다. 파리시는 미국에서 원격으로 선거 운동을 펼치고도 선전했다. 지난 2013년 대선 1차 투표 때 그를 지지했던 유권자 상당수가 결선 투표에서 보수 후보쪽으로 기운 바 있어, 이번 결선 투표에서도 파리시 지지층의 향배가 주목된다.
한편, 이날 금융 시장은 강세를 보였다. 증시 지수(S&P IPSA)는 9.6% 상승했고 페소화 가치도 2.15% 상승해 달러당 811.95페소 수준을 나타냈다. 시장 분석가들은 경제에 급격한 변화가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가 금융 시장 강세를 부른 것으로 분석했다. 신기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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