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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외교냐 대결이냐…미-러, ‘우크라 위기’ 놓고 연쇄회담 돌입

등록 2022-01-10 16:59수정 2022-01-11 02:32

9일 제네바에서 실무만찬 하며 탐색전
미 “주권과 영토 온전성 원칙 강조”
러 “쉽지 않았지만 실제적 대화”
유럽의 미래 결정할 중요한 한주될 듯
8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에서 우크라이나 군인이 친러시아 반군의 참호를 감시하고 있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국경 부근에 대규모 병력을 배치해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미국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위기와 관련한 고위급 실무회담인 ‘전략안정대화’(SSD)를 10일 열었다. 도네츠크/AP 연합뉴스
8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에서 우크라이나 군인이 친러시아 반군의 참호를 감시하고 있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국경 부근에 대규모 병력을 배치해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미국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위기와 관련한 고위급 실무회담인 ‘전략안정대화’(SSD)를 10일 열었다. 도네츠크/AP 연합뉴스
미국과 러시아의 관계가 1991년 말 소련 붕괴 이후 가장 중요한 변곡점 위에 올라섰다. 13일까지 진행되는 연속 회담에서 ‘우크라이나 위기’를 수습하기 위한 외교적 해법을 도출해내지 못하면, 러시아의 군사행동과 미국의 보복조처가 이어지며 유럽 전체가 신냉전의 소용돌이에 휩쓸리게 될 수 있다.

미-러는 우크라이나 위기와 관련한 고위급 실무회담인 ‘전략안정대화’(SSD)를 하루 앞둔 9일(현지시각) 두시간 넘게 실무 만찬을 했다. 미 국무부는 만찬 직후 보도자료를 내어 웬디 셔먼 부장관이 이날 세르게이 럅코프 러시아 외교차관에게 “주권과 영토 온전성에 관한 국제적 원칙, 주권국가가 동맹을 스스로 선택할 자유에 관한 미국의 약속을 강조했다”고 전했다. 럅코프 차관도 회담 직후 기자들과 만나 “대화가 쉽지는 않았지만, 원칙적으로 현실적이었다”며 낙관할 근거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가 내일(10일) 시간 낭비를 할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다만 ‘러시아가 타협할 준비가 돼 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엔 “미국이 타협에 이를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본회담을 앞두고 치열한 ‘기 싸움’을 벌인 셈이다.

이번 회담은 소련 붕괴 이후 30년 동안 러시아와 미국 등 서구 사이 갈등의 핵심 원인이었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동진을 둘러싸고 타협점을 찾는 자리이다. 이날 양자 회담을 마친 뒤 12일엔 나토와 러시아의 회담, 13일엔 우크라이나도 참여하는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회담이 이어진다. 회담이 세차례로 나뉘어 이뤄지는 것은 우크라이나 위기의 당사자인 나토와 우크라이나가 없는 상황에서 ‘미국이 모든 것을 결정하지 않겠다’는 조 바이든 행정부의 방침에 따른 것이다. 이를 강조하듯 미 국무부는 “미국은 러시아와의 특정한 양자 사안들을 논의하겠지만, 유럽 동맹, 파트너 없이 유럽의 안보를 논의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럽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이번 회담의 중요성을 인식한 듯 양국은 연쇄 회담에 기대치를 낮추는 한편 “양보는 없다”며 서로를 압박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9일 오전 <시엔엔>(CNN) 등 방송 인터뷰에서, 이번 회담은 우크라이나 침공 위협에 대한 양보를 논의하는 자리가 아니라면서 “다가오는 주에 우리가 돌파구를 찾진 못할 것 같다. 러시아가 10만 병력을 배치해놓고 우크라이나에 총구를 겨누면서 긴장 고조 행위를 계속하면 실질적인 진전을 보기가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럅코프 차관 역시 만찬에 앞서 “당연히 우리는 압박을 받아 어떤 양보를 하지 않을 것”이라며 “미국은 환상을 가져선 안 된다”고 말했다고 러시아 관영 통신 <리아 노보스티>(RIA)가 보도했다.

하지만 양국은 서로에게 자신들이 가진 카드를 내보인 상태다. 러시아는 지난달 15일 미국에 △나토의 동진 중단 △러시아 국경 인근 공격용 무기 배치 중단 △러시아의 동의 없이 1997년 이후 나토에 가입한 폴란드·헝가리 등에 배치된 나토군 철수 등의 명시적 안전 보장 등을 요구사항으로 내걸었다. 특히, 나토의 동진 금지 등 핵심 요구 사안에 대해 ‘법적 구속력’ 있는 조약 형태로 보장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미국은 8일 고위 당국자의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우크라이나에 공격형 미사일 배치 감축 △동유럽에서 미국과 나토의 군사훈련 제한 등의 문제는 논의할 수 있다는 여지를 뒀다. 블링컨 장관 역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2019년 8월 일방 폐기한 미-러 중거리핵전력(INF) 조약의 부활 가능성을 언급했다. 그는 9일 <에이비시>(ABC) 방송 인터뷰에서 “그걸 갱신하는 데 관한 바닥(기본적 논의)을 다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게 러시아가 진지하게 나올 때만 검토할 수 있는 것들”이라며 “지금 진짜 질문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외교와 대화의 길을 택할 것이냐, 대결을 택할 것이냐이다”라고 말했다. 럅코프 차관은 이에 대해 “러시아가 원하는 것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며 “수십년간 이어진 파괴적인 나토의 행위를 축소시키고, 나토를 1997년 수준으로 되돌려야 한다”고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양쪽의 입장이 날카롭게 맞선 만큼 이번 회담 결과는 즉각 발표되진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번의 회담으로 똑 부러진 결론이 나오기 힘든 구조인데다, 실패를 인정할 경우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타협이 이뤄진다 해도 민감한 국내 여론을 살피며 신뢰 회복을 위한 세밀한 사전 정지 작업을 거칠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jay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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