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이 공장에서 품어져 나오는 매연을 배경으로 크로스컨트리 스키를 타고 있다. 4일 캐나다 토론토에서 찍었다. 캐나디안 프레스(The Canadian Press),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기후변화가 인류에게 가져올 파괴적 영향이 알려지면서 세계 굴지의 기업들이 야심 찬 계획을 내세워 탄소감축에 나서고 있지만, 대부분 구체성이 부족하고 과장된 것으로 조사됐다.
독일의 ‘신기후연구소’(NCI)는 7일 환경단체 ‘탄소시장감시’(CMW)와 함께 아마존, 폴크스바겐, 월마트 등 다양한 분야 글로벌 기업 25곳의 탄소중립 약속을 평가한 ‘기업의 기후 책임성 모니터’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를 보면 기업들의 계획은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수준의 40%만 감축하는 안으로 구성돼 있는 등 매우 불충분한 것으로 조사됐다. 3일 한국 대선 후보 토론회를 통해 화제가 된 ‘아르이(RE)100’ 역시 기업이 쓰는 전력의 100%를 태양광 등 재생가능에너지로 바꾸자는 기업의 탄소감축 캠페인이다.
보고서의 분류 기준에 따르면, 약속의 신뢰성이 ‘높은’ 기업은 없었으며, 다음 단계인 ‘합리적’에 해당하는 기업도 덴마크 해운기업 머스크 1곳뿐이었다. 애플, 소니, 보다폰 등 3곳이 약속 이행의 신뢰성이 ‘중간’ 수준인 기업으로 꼽혔고, 나머지 기업은 신뢰성이 ‘낮다’(아마존 등 10곳) 또는 ‘매우 낮다’(베엠베 등 11곳)로 분류됐다.
보고서의 주요 저자인 토머스 데이 신기후연구소 기후정책분석가는 “기업들이 따라 해도 좋을 선례를 찾아보려고 조사에 착수했으나, 솔직히 주장의 신뢰성이 전반적으로 낮아 놀라고 실망했다”고 말했다. 이어, “기후변화 대응에 나서야 한다는 압력이 높아짐에 따라, 기업들이 야심 찬 탄소감축 계획을 발표하지만 실체가 부족한 주장에 그치는 경우가 많고, 비교적 잘하는 기업들도 종종 과장된 주장을 내놓기 일쑤”라고 말했다.
실제, 조사 대상 25곳 중 13곳만 탄소중립 약속을 실행할 구체적인 탄소감축 계획을 내놓았으며, 이마저도 2019년 대비 40% 감축에 그쳤다. 나머지 12곳은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한 구체 이행 계획을 내놓지 않았다.
독일의 전력회사 에온과 프랑스 유통기업 카르푸르 등 8곳은 이른바 ‘스코프(scope) 3’ 유형의 배출을 일부 감축 계획에서 누락했다. 스코프 3는 제품 생산에서 운송, 처분, 사용까지 밸류 체인에 따라 생산되는 모든 탄소 배출을 의미한다. 예컨대 차량 구매자가 차량을 몰 때 배출되는 탄소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에 따르면 이들 ‘스코프 3’ 유형의 탄소 배출은 기업이 책임져야 하는 배출의 70% 이상을 차지한다.
또 24개 기업이 탄소감축 방안으로 직접 감축 대신 다양한 ‘탄소 상쇄’(carbon offset)를 제시하고 있으며, 3분의 2는 대규모 조림(나무를 심는 것) 등 여러 생물적 방법에 의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탄소 상쇄 방식은 산불이나 병충해 등으로 손쉽게 무위로 돌아갈 수 있다.
몇몇 기업은 스스로 설정한 탄소중립 목표 연도 직전에 한꺼번에 탄소감축을 실시하는 계획을 제시했다. 영국의 제약회사 글락소스미스클라인은 203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고 밝혔지만, 실제 감축 계획은 마지막 해에 목표의 3분의 1을 줄이는 것으로 돼 있다. 글락소스미스클라인은 “호흡곤란 환자를 위한 저탄소용 흡입기 개발이 완료되면 탄소 발자국을 34% 줄일 수 있다”고 해명했다고 <워싱턴 포스트>가 전했다. 탄소 발자국이란 제품의 원료 채취에서 생산, 유통, 소비, 폐기까지 전 과정에 걸쳐 배출되는 탄소 총량을 말한다.
반면, 보고서는 2040년까지 탄소중립 계획을 발표한 머스크가 항구 터미널의 탄소 배출을 70% 줄이겠다고 약속하고 지난해 탄소중립 선박을 8척 주문해 2024년부터 운항할 예정이라며 높은 평가를 내렸다. 구글도 질 높은 재생가능에너지를 획득하는 혁신적인 수단을 개발하고 있다며 의미 있는 사례로 꼽았다.
박병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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