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의 지하철역 밖에서 시민들이 서로 껴안고 있다. 키예프/AFP 연합뉴스
“실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24일 아침 6시께(모스크바 시각)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대해 전쟁을 선언하는 화상 성명을 발표한 뒤, 우크라이나 시민들은 온통 혼란에 빠졌다. 푸틴 대통령의 발표 직후 카메라 앞에 선 영국 <비비시>(BBC) 방송의 특파원 세라 레인스퍼드는 우크라이나인들이 “앞으로 다가올 일에 대해 놀라고 겁을 먹었다”고 말했다.
숨이 멎을 것 같은 혼란 속에서도 우크라이나 정부는 즉각 계엄령을 선포하고, 러시아 국경 지역에서 러시아의 포탄 공격에 맞대응하는 등 긴박하게 움직였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의 미사일 공격이 이날 새벽부터 사회 기간시설과 국경수비대에 집중됐다며 국방안보위원회 회의를 소집해 전국에 계엄령을 선포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와 외교 관계 단절도 선언했다. 이날 오전까지 러시아의 공격으로 군인 40명 이상과 민간인 10명 정도가 숨졌다고 대통령 고문이 밝혔다.
우크라이나 국방부 당국자는 “적군이 군사 기지와 군 비행장 등 동부 지역에 포탄 공격을 집중했다”고 밝혔다. 군 관계자들은 이날 오후 들어 러시아군이 수도 키예프 인근 공항을 공격하면서 수도 진입을 시도해 우크라이나군과 치열한 교전을 벌이고 있다고 전했다. 러시아 언론들은 러시아군이 흑해 연안 항구도시 오데사와 동부 지역 마리우폴에 상륙했다고 보도했으나, 우크라이나 군부는 오데사 상륙은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우크라이나 국경수비대는 러시아 접경 지역과 벨라루스 접경에서도 동시에 포탄 공격을 받았으며 이에 맞서 대응 사격을 가했다고 밝혔다. 또 동부 분쟁 지역 내 정부 통제 지역인 시차스탸가 친러시아 반군 세력에 점령당했다고 <아에프페>(AFP) 통신이 전했다. 우크라이나군은 동부 분쟁 지역으로 러시아 탱크 2대와 몇몇 트럭이 진입한 것을 확인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러시아군 탱크와 중장비들이 러시아에 강제병합한 크림반도에서부터 남쪽 국경도 넘어 침공했다고 <아에프페> 등이 보도했다.
러시아가 이날 새벽 침공을 개시한 이후 수도 키예프 외에 동부 하르키우와 드니프로, 오데사, 동부 분쟁 지역 내 베르댠스크, 도네츠크, 서부의 리비프(르비우) 등 우크라이나 곳곳에서 폭발음이 들렸다. 전황에 대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발표는 모순되는 것이 많아 정확한 진상 파악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비비시> 방송은 이날 오전 키예프에 공습경보 사이렌이 울린 직후부터 도시를 빠져나가려는 차량 행렬이 고속도로로 몰려 교통 정체가 빚어졌다고 전했다. <에이피>(AP) 통신 등은 연료를 넣으려는 차량들이 시내 곳곳의 주유소로 몰려들었다고 전했다. 소셜미디어에는 두려움을 토로하는 시민들의 글이 이어졌다. 일부 소셜미디어 이용자들은 사람들이 공습경보 이후 지하실 등으로 긴급 대피했다고 알렸다. 영국 <가디언>의 현지 특파원은 거리에 사람들이 거의 보이지 않는 가운데 일부 현금인출기에는 아침 일찍부터 현금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늘어섰다고 전했다. 이 특파원은 자신의 집 지하실로도 사람들이 대거 몰려들었다고 덧붙였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폭격이 시작된 24일 오전 수도 키예프를 빠져나가려는 차랑들이 고속도로를 가득 메우고 있다. 키예프/로이터 연합뉴스
앞서 우크라이나 정부는 이날 새벽 ‘잠재적 위험’을 이유로 민간 비행기의 운항을 전면 금지시켰다. 이 결정은 분쟁 지역 모니터팀이 항공기들이 의도하지 않은 군사 공격이나 사이버 공격으로 격추될 위험이 있다고 경고한 직후 나왔다. 키예프 국제공항에서는 승객과 승무원이 대피했으며, 민항기 운항도 전면 중단됐다. 운항 금지 조처 직후,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캐나다 토론토로 향하던 엘알 이스라엘 항공이 우크라이나 영공을 긴급히 빠져나갔고,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우크라이나 키예프로 가던 폴란드 항공의 여객기도 바르샤바로 회항했다.
유럽 항공 관제 기관인 유로컨트롤은 우크라이나 영공이 군사적 제한 때문에 접근할 수 없는 상태라고 전했다. 유로컨트롤은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 국경,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국경으로부터 100마일 이내를 운항 금지 구역으로 지정했다. 우크라이나 외무부는 이날 성명을 내어 “국제사회는 즉각 행동해달라”며 “단합되고 단호한 행동만이 블라디미르 푸틴의 침략을 막아낼 수 있다”고 촉구했다.
신기섭 선임기자
marish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