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새벽(현지시각)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 시내에서 우크라이나 군과 러시아 군의 교전이 벌어진 가운데 폭격을 당한 시내 건물에서 화염이 치솟고 있다. 키예프/로이터 연합뉴스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침공이 3일째로 접어든 26일 새벽(현지시각) 러시아 군이 수도 키예프 시내까지 진출해 우크라이나 군과 교전을 벌였다. 수도를 함락시키려는 러시아 군의 작전이 본격화한 모양새다.
영국 <비비시>(BBC) 방송은 현지 통신 보도를 인용해 이날 이른 아침 시내에서 교전이 벌어졌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 <인테르팍스> 통신은 정부가 성명을 내어 “현재 시내 거리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며 시민들에게 대피소에서 나오지 말라고 경고했다고 보도했다.
우크라이나 군은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키예프 시내 ‘승리 거리’에 있는 군 시설에 대한 러시아의 공격을 격퇴시켰다”고 밝혔다고 <아에프페>(AFP) 통신이 전했다. 군은 시내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며 적들을 여러 지역에서 격퇴시켜 도시 점령 시도를 막아냈다고 설명했다. 현지 주재 언론인들은 소셜 미디어 등을 통해 이날 새벽 키예프 중심지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큰 폭발음이 들렸다고 알렸다고 <비비시>가 전했다. <로이터> 통신은 키예프 정부 기관이 모여 있는 지역에서도 총격 소리가 들렸다고 목격자들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우크라이나 군은 키예프 서쪽 지역에서 이날 새벽 울린 폭발음은 자국 군이 “점령군의 장비 다수”를 파괴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고 미국 <시엔엔>(CNN) 방송이 전했다. 군은 “초기 상황 보고에 따르면, 탄약을 실은 트럭 2대를 파괴했다”며 “단거리 대전차 미사일(NLAW)을 동원해 적군의 탱크 한 대도 파괴했다”고 설명했다. 군의 이런 주장은 별도로 확인되지 않았다고 방송은 덧붙였다. 이 대전차 미사일은 몇 주 전 영국이 제공한 것이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의 고문은 남동부 항구 도시 헤르손과 미콜라이우, 남서부 항구 도시 오데사에서도 이날 오전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고 밝혔다고 <로이터>가 전했다.
새벽부터 키예프를 뒤흔든 총소리와 경고 사이렌 소리는 아침으로 접어들면서 잦아들었다고 <비비시>가 전했다. 시민들은 너무나 고요해서 멀리서 들려오는 새의 울음 소리를 들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현지의 <비비시> 특파원도 ‘으스스한’ 고요가 도시를 사로잡았다며 “(하지만) 순식간에 바뀔 수 있다는 걸 누구나 안다”고 말했다. 젤렌스키 대통령도 이날 아침 키예프 시내 대통령 관저 인근에서 찍은 것으로 보이는 동영상을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올리며 건재함을 알렸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자신이 직접 스마트폰을 들고 찍은 이 동영상에서 “내가 군인들에게 무기를 버리라고 명령했다는 거짓 정보가 온라인에 넘쳐나고 있다”며 “나는 여기 있으며, 우리는 무기를 버리지 않고 국가를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소셜미디어에서는 이날 아침 키예프 국제공항 인근의 고층 아파트가 미사일 공격을 받아 중간 층이 파괴된 사진이 올라왔다. 이와 관련해 <로이터> 통신은 키예프 남서부 지역으로 두 발의 미사일이 날아왔으며 이 중 하나는 공항 주변에 떨어졌다고 전했다. 키예프 시 정부도 미사일 한 발이 주거용 건물에 떨어졌다고 확인했다.
26일(현지시각) 미사일 공격을 받아 파손된 우크라이나 키예프 국제공항 인근 아파트. 키예프/로이터 연합뉴스
러시아 국방부는 이날 주요 도시 한 곳을 처음으로 점령했다고 주장했다. 국방부는 인구 15만명 규모의 남동부 해안 도시 멜리토폴을 장악했다고 밝혔다고 <로이터> 통신이 전했다. 이 지역은 수도 키예프, 남서부 항구 도시 오데사와 함께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곳이다.
앞서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25일 밤 키예프에 대한 러시아의 총공세가 예상된다고 밝혔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화상 연설에서 “오늘밤은 어제보다 더 어려운 날이 될 것”이라며 “우리는 수도를 잃을 수 없다”고 말했다고 <아에프페> 통신 등이 보도했다.
키예프로 진입하려는 러시아 군과 이를 막으려는 우크라이나 군은 25일 내내 키예프 북부와 서부 지역에서 치열한 교전을 계속했다. 러시아는 키예프 진입의 교두보 구실을 하는 호스토멜(고스토멜) 비행장을 장악했다고 밝혔다. <로이터> 통신은 이런 주장은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으며, 우크라이나 당국은 이 비행장 주변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고만 확인했다고 전했다.
25일 키예프 주변 전투는 이 도시에서 북쪽으로 40~80㎞ 떨어진 두 곳에서 주로 벌어졌다고 <아에프페>가 전했다. 미국의 고위 정보 관계자는 러시아 군이 이날 키예프 북부와 서부에서 수도 인근 50㎞까지 접근했다고 밝혔다. 키예프 외곽에는 러시아 전차, 보병, 공수부대원들이 침투를 준비하고 있으며, 러시아의 파괴 공작원들은 이미 키예프에 진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 당국은 키예프가 조만간 함락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보고 있으나, 우크라이나 군의 저항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키예프 시내 정부 기관 주변에서는 무장 차량과 기관총으로 무장한 군인들이 배치돼 러시아의 침공에 대비했다.
신기섭 선임기자
marish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