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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여전히 끔찍한 여성 인신매매…‘쇠사슬 여성’이 중국에 던진 질문

등록 2022-02-28 13:59수정 2022-02-28 15:14

[최현준의 DB_deep 차이나 ]
100만원에 팔려 8명 아이 낳고 쇠사슬에 묶인 여성
중 당국 언론통제 속에 여성 인권 철저히 짓밟혀

여성 고통 당연시 문화…“아버지를 감옥에 넣냐”
주류 언론 외면 속 누리꾼·시민 처참한 진상 알려
한 중국 블로거가 지난 1월 중국 장쑤성에서 쇠사슬에 묶인 여성을 찾아 방송을 하고 있다. 웨이보 갈무리
한 중국 블로거가 지난 1월 중국 장쑤성에서 쇠사슬에 묶인 여성을 찾아 방송을 하고 있다. 웨이보 갈무리

중국 언론이 베이징 겨울올림픽에 집중하던 2월 초, 중국판 트위터 ‘웨이보’와 ‘더우인’(틱톡)에서는 한 중국 여성의 인신매매 의혹 사건에 누리꾼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목에 쇠사슬이 묶인 여성이 십수 년 동안 여덟 명의 아이를 낳은 사연을 담은 짧은 영상이 발단이 됐다. 주류 매체의 철저한 외면 속에 블로거의 직접 취재와 누리꾼들의 댓글 제보가 이어졌고, 대학생들도 조사를 요구했다. 중국 당국은 결국 올림픽이 폐막하고 사흘이 지난 23일에야 사건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지역 당 서기 등을 대거 좌천하는 등 수습에 나섰다. 주류 매체들도 기다렸다는 듯 이날에야 비판·분석 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여성을 납치해 아내로 삼는 야만적 문화는 물론 중국 당국의 언론 통제 실상이 드러났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가운데)이 20일 중국 베이징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2022 베이징겨울올림픽 폐회식에 참석해 관객들과 선수들한테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가운데)이 20일 중국 베이징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2022 베이징겨울올림픽 폐회식에 참석해 관객들과 선수들한테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1월28일, 중국 뒤흔든 두 개의 영상

1월28일 더우인에 영상 두 개가 올라온다. 한 누리꾼이 장쑤성 쉬조우 펑현을 방문해 찍은 것으로, 인터넷 기부금을 모으기 위해 빈곤층을 찾는 내용이었다. 외투 없이 분홍색 웃옷을 입은 여성이 목에 쇠사슬이 묶인 채 지저분한 집 안에 서 있다. 또 다른 영상에서는 그의 남편으로 보이는 남성이 8명의 아이가 있다고 자랑하듯 말했다. 누리꾼들은 이 여성이 왜 쇠사슬에 묶여 있는지, 어떻게 8명의 아이를 낳았는지 의문을 제기했고, 단시간에 20억회 가까이 조회가 이뤄졌다.

같은 날 펑현 당국은 이 여성에 대한 공식 성명을 내놨다. 그가 양씨로 45살이고, 둥아무개씨와 1998년 결혼해 8명의 아이를 낳았다는 것이다. 목에 쇠사슬이 채워진 것은 그의 폭력적인 성향 때문이라고 했다. 펑현 당국은 두 차례 더 조사 결과를 내놨고 남편 둥씨와 이웃 주민 쌍아무개씨를 각각 불법 구금과 인신매매 혐의로 체포했다. 하지만 여전히 의혹과 분노가 가라앉지 않았다.

지난 23일 뒤늦게 장쑤성 당 위원회와 성 정부 조사를 통해 드러난 조사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여성은 윈난성 출신으로 3차례 인신매매 끝에 1998년 둥씨와 함께 살게 됐다. 여성의 고향인 윈난은 펑현에서 약 1800㎞ 떨어졌다. 여성은 1차 인신매매 때 100만원이 채 안되는 중국 돈 5천위안에 팔린 것으로 조사됐다. 여성은 1999년부터 2020년까지 8명의 자녀를 출산했고, 이 가운데 6명의 아이는 집에서 낳았다. 여성은 2017년부터 조현병 증세를 보였고, 둥씨는 여성을 쇠사슬로 묶어 관리했다. 장쑤성 당국은 이날 펑현 당 서기 등 17명에게 직무유기, 허위 정보 발표 등을 이유로 면직, 직위 강등 등의 처분을 내렸다.

펑현만이 아니다…중국에 만연한 인신매매

23일 당국 조사가 발표되기 전, 일부 누리꾼들과 기자들은 본인 경험을 털어놓거나 판결문 분석을 통해 펑현에 인신매매가 적지 않았음을 드러냈다. 미국 <엔피아르>(NPR) 등 보도를 보면, 펑현의 한 누리꾼은 “나의 숙모는 쓰촨성에서 인신매매를 당해 내 삼촌과 결혼했다. 그는 아들을 하나 낳은 뒤 도망쳤다”고 웨이보에 적었다. 또 다른 누리꾼은 “나의 엄마는 이웃 마을의 한 주민에게 팔려 거짓 신분을 부여받고, 10년 동안 성적으로 학대당했다”고 적었다.

이들은 펑현에서 인신매매가 흔한 일이고 주민들은 이를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숙모가 인신매매 당한 사실을 털어놓은 누리꾼은 “마을 사람들은 그들 스스로가 인신매매된 여성의 자녀들이다. 당신은 그들이 자신의 아버지를 감옥에 넣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라고 적었다. 뤄단이라는 펑현 마을 주민은 웨이보에 “남성이 이익을 얻고 여성이 고통받는 것은 그들에게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이런 일에 대해 아무도 의문을 품지 않았다”고 적었다.

일부 매체는 판결문을 뒤져 과거 인신매매 사건을 보도했다. <중국경제주간>은 지난 16일 펑현에서 인신매매로 팔려온 여성이 제기한 이혼소송 두 건을 보도했다. 그러나 법원은 남편의 책임이 분명하지 않다는 이유로 이혼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후 블로거들은 추가 조사를 통해, 인신매매를 통해 이뤄진 결혼이 장쑤성에서만 적어도 30여건에 이른다는 내용을 밝혀냈다. 최근 몇 년 새 펑현의 강가에서 발견된 시신 대부분이 여성이었으며, 여성 인권에 대한 펑현 당국의 미온적 태도로 인해 여성들이 스스로 삶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도 나왔다.

여성 인신매매는 펑현 뿐만 아니라 중국 전역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오래 지속된 한 자녀 정책과 남아선호 사상으로 인해, 남자가 많고 여자가 적은 남초 현상이 지속된 탓이다. 중국 국가통계국이 발표한 ‘중국통계연감 2021’을 보면, 중국 전체 남녀 성비는 여성 100명당 남성 105.07명이었지만, 농촌의 경우 여성 100명당 남성이 107.91명까지 올라갔다. 또 중국 31개 성 가운데 14곳은 여성 100명당 남성이 110명 이상이었다. 윈난, 쓰촨, 동남아시아, 심지어 북한 여성 등도 납치돼 중국 남성들에게 팔린다는 얘기가 나온다.

중국 당국은 여성 인신매매를 타파하려고 노력하지만 뿌리깊은 관행은 쉽게 근절되지 않는다. 중국 국무원 여성아동 공작위원회는 2013년과 2020년 각각 7개년 계획으로 ‘중국 인신매매 근절 행동계획’(中国反对拐卖人口行动计划)을 내놓고 각 성에 하달했다. 그러나 여전히 빈틈이 적지 않다. 예컨대 인신매매 구매자는 1997년까지 형사 처벌을 받지 않았고, 2015년까지는 기소를 피할 수 있었다.

중국 장쑤성 쉬조우 펑현에서 쇠사슬을 목에 찬 채 발견된 여성. 웨이보 갈무리
중국 장쑤성 쉬조우 펑현에서 쇠사슬을 목에 찬 채 발견된 여성. 웨이보 갈무리

올림픽 기간엔 안돼…당국의 언론통제?

지난 1월28일 ‘쇠사슬 여성’의 영상이 올라오고 온라인은 곧바로 뜨거워졌지만, 주류 매체들은 이 사건을 철저히 외면했다. 누리꾼의 분노에 내몰린 펑현 당국이 1월말부터 2월 중순까지 세 차례 조사 결과를 내놨지만 반응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이 기간 동안 중국에서는 베이징 올림픽이 열렸고, 최대 명절인 춘절 연휴를 맞았다. 일부 주간지 등과 대만, 싱가포르, 서구권 매체 등이 사건을 보도하긴 했지만, <중국중앙텔레비전>(CCTV)과 <신화통신> 등 중국의 주류 매체들은 애써 눈을 돌렸다. 중국 당국이 언론 보도를 통제한 것으로 추정된다. 홍콩 매체 기자들이 이달 초 이 사건 취재를 위해 펑현을 방문했지만 마을에 들어가는 것이 금지됐다. 올림픽이 진행되는 동안 중국의 반인권적인 모습이 외부에 노출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지난 4일 중국 베이징 국가체육장에서 열린 겨울 올림픽 개막식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이 손을 흔들고 있다. 베이징/AP 연합뉴스
지난 4일 중국 베이징 국가체육장에서 열린 겨울 올림픽 개막식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이 손을 흔들고 있다. 베이징/AP 연합뉴스

중국 주류 언론의 부재를 메운 것은 블로거 등 누리꾼들이었다. 안후이성과 장수성에 사는 우이와 추안메이가 의기 투합해 취재에 들어갔다. 이들은 웨이보에 “세계는 당신을 버리지 않았다. 당신의 언니들이 가고 있다”고 알린 뒤, 펑현에 도착해 날마다 자신들의 취재 기록을 올렸다. 이들은 곧 당국의 방해에 부닥쳤고, 지역 호텔은 그들의 체크인을 거부하기도 했다. 대학생들도 공조에 나섰다. 싱가포르 매체 <연합조보> 보도를 보면, 베이징대 학생 100명이 중앙 정부의 철저한 조사를 요구하는 공개 서신을 연명으로 발표했다. 칭화대 법대 교수인 라오둥옌은 19일 웨이보를 통해 이 사건에 대한 관심을 호소했다.

베이징/최현준 특파원 hao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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