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아니아 수도 키이우(키예프)의 텔레비전 송신탑이 1일(현지시각) 러시아군으로부터 폭격을 당해 화염에 휩싸여 있다. 키이우/로이터 연합뉴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2일(현지시각)로 일주일째를 맞으면서 전장이 키이우(키예프) 등 대도시 주변 공방에서 ‘정보 전쟁’으로 번지고 있다. 러시아군은 1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의 우크라니아 보안국이 이용하는 통신망과 군 정보·심리작전 부대에 대한 공격을 예고한 뒤 키이우 도심의 텔레비전 송신탑을 폭격했다고 <에이피>(AP) 통신 등이 보도했다. 이 공격으로 적어도 5명이 숨졌다.
러시아군의 이런 공세는 키이우와 하르키우(하르코프) 진입이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전쟁 상황을 알리고 여론을 주도하는 정보 전쟁에서도 밀린다는 불안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 정부는 우크라이나 침공 4일째에 가서야 자국군 병력 손실을 인정하는 등 전쟁 상황에 대해 거의 침묵하고 있다.
반면, 우크라이나쪽은 중앙 정부는 물론 각 지역 정부 관계자들이 페이스북, 텔레그램, 트위터 등을 통해 피해 상황 등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다고 <비비시>(BBC) 방송 등이 전했다. 이들의 적극적인 온라인 홍보 활동은 러시아군의 잔혹상을 알리는 한편 전세계에서 우크라이나 지지 여론을 확산시키고 있다.
구글·애플 등 거대 온라인 기업들도 미국과 유럽연합 등의 러시아 국영 언론 제재에 동참하면서 러시아는 점점 더 국제 여론으로부터 고립되고 있다. 세계 최대 검색 서비스인 구글은 1일 러시아 국경 방송사 <러시아 투데이>(RT)를 자사의 뉴스 검색에서 차단시켰다고 발표했다. 구글의 국제 업무 담당 사장 켄트 워커는 “이 보기 드문 위기 국면에서 우리는 온라인을 통한 잘못된 정보 유포와 거짓 선전 활동을 막기 위한 비상 조처를 취했다”고 말했다. 구글은 앞서 동영상 사이트인 유튜브를 통한 러시아 국영 언론사들의 광고 수익 활동을 차단했다. <러시아 투데이>는 전세계 47개국에서 1억명 가량의 시청자를 확보하고 있으며, 2020년에는 유튜브를 통한 조회수가 100억회를 넘기기도 했다.
애플도 <러시아 투데이>와 러시아 국영 통신사 <스푸트니크>의 스마트폰 앱 내려받기를 러시아를 뺀 전세계에서 차단시켰다고 발표했다. 두 언론사는 미국과 유럽연합 등으로부터 제재 대상 언론으로 지정된 바 있다.
이에 대해 <러시아 투데이>의 부 편집장 아나 벨키나는 구글 등의 조처는 “서양 기득권 기업들이 다른 목소리의 존재만으로도 두려움을 느낀다는 걸 보여준다”며 “그들은 시청자들이 다른 관점을 접하게 되면, 자신들이 오랜 기간 장악해온 시청자층을 잃을까 두려워한다”고 주장했다.
악성 코드나 랜섬웨어를 통한 러시아의 사이버 공격도 거의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러시아의 악명 높은 사이버 범죄 집단 ‘콘티’는 지난주 러시아 정부에 대한 전면적인 지지를 선언했다가 철회했고, 또다른 랜섬웨어 공격 집단인 ‘록빗’은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해 중립을 선언했다. 록빗은 “우리는 돈에만 관심이 있고 정치는 관여하지 않는다”며 “국제 분쟁과 관련된 공격에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사이버 범죄 집단의 이런 움직임은 보험회사들의 피해 보상 정책 탓이 크다고 통신은 전했다. 많은 보험사는 전쟁 중에 입은 피해를 보상하지 않으며, 이 때문에 랜섬웨어 공격으로 돈을 버는 해커 집단들로서는 전쟁과 연루될 경우 돈벌이에 방해가 된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이들은 미국 등으로부터 테러 집단으로 지정될 경우, 자신들의 공격을 당한 기업 등이 ‘몸값’ 요구에 쉽게 응하지 않을 것 또한 우려한다고 통신은 지적했다.
우크라이나군과 러시아군의 전투는 이날도 수도 키이우, 제2 도시 하르키우, 남부 흑해 연안 지역에서 치열하게 벌어졌다. 러시아의 미사일 공격이 이어지고 있는 하르키우에서는 의료진들이 산모들을 지하 대피소로 이동시키기 시작했다고 <에이피>(AP) 통신이 전했다. 비좁은 대피소 공간에서 산모들이 초조한 듯 서성거리고 곳곳에서 신생아들의 울음소리가 들렸다고 통신은 전했다.
신경계 질환을 앓고 있는 어린이 환자 등을 위한 ‘하르키우 히포크라테스 센터’는 긴장 속에 병원 운영을 계속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고 <비비시> 방송이 전했다. 이 병원 관계자는 “영문을 모르는 아이들은 우리가 놀이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아직까지 폭격을 당하지 않아 전기만 끊기지 않으면 괜찮다”고 밝혔다고 방송은 전했다.
러시아군은 2일 오전 낙하산 부대를 하르키우 북부에 투입해 군 병원을 공격하는 등 하르키우에 대한 공세를 계속 강화하고 있다고 우크라이나 군 관계자들이 밝혔다. <시엔엔>은 러시아군이 5군데 주거 지역 건물에 대해서도 폭격을 가했다고 전했고, 시 정부는 폭격으로 적어도 21명이 숨지고 112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러시아는 이날 오전 남부 흑해 연안 항구도시 헤르손을 완전히 장악했다고 주장한 반면 우크라이나쪽은 러시아군이 도시를 포위하고 있지만 함락되지는 않았다고 주장했다.
신기섭 선임기자
marish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