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키예프) 북쪽의 작은 도시 이르핀 주민들이 7일(현지시각) 무너진 다리 아래 놓인 널빤지를 통해 남쪽으로 탈출하고 있다. 이르핀/AP 연합뉴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공격 12일째인 7일 수도 키이우(키예프) 인근 작은 도시 이르핀에서 주민 2천명가량이 마지막 필사의 탈출에 성공했다. 키이우에서 북쪽으로 25㎞ 떨어진 이 도시는 우크라이나군과 러시아군의 교전이 치열하게 진행돼 왔다. 이 탈출로 도시엔 민간인이 거의 남지 않게 됐다.
<로이터> 통신은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군을 저지하기 위해 파괴한 다리 아래 놓인 널빤지 등을 이용해 주민들이 남쪽으로 탈출했다고 보도했다. 주민들은 아이와 반려동물 등을 이끌고 불에 탄 건물과 갖가지 파편이 널브러진 거리를 걷거나 뛰어 도시를 벗어났다. 이날 탈출에 성공한 한 주민은 “이르핀이 심한 폭격을 받고 있고, 민가에 폭탄이 떨어져 한 여성과 13살짜리 아이가 숨졌다”고 전했다.
현지 경찰은 “이르핀 민간인 2천명가량이 대피를 완료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당국자는 주민들이 공격을 받지 않고 탈출했고, 도시의 30%를 러시아군이 장악하고 있다고 전했다. 탈출한 주민들은 “도시에 남은 사람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키예프) 북쪽의 작은 도시 이르핀 주민들이 7일(현지시각) 무너진 다리 아래 놓인 널빤지를 통해 남쪽으로 탈출하고 있다. 이르핀/AFP 연합뉴스
흑해와 이어지는 남부의 주요 항구도시인 오데사에선 이날 거대한 폭발음이 잇따라 들리는 등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고 영국 <비비시>(BBC) 방송이 보도했다. 공습경보 사이렌이 시시때때로 울리는 가운데 도시에선 저녁 7시부터 통행금지가 실시되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핵심 무역항인 오데사는 러시아가 주요 점령 목표로 삼는 곳이다. 러시아 해군은 본격적인 공세를 앞두고 오데사 인근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25일 러시아군에 점령당한 키이우 북부 체르노빌 원전에서는 100여명의 직원과 200여명의 경비대가 하루에 한끼 식사에 기대 열흘 이상 버티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원전에 남은 직원의 한 친척은 러시아군이 근무 교대를 허용하겠다고 하나, 이동의 안전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고 현장 상황을 알렸다. 평소에 직원들은 체르노빌에서 근무한 뒤 기차를 통해 인근 슬라부티치로 이동하지만, 기차가 러시아의 협력국인 벨라루스를 거쳐 가야 해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다. 체르노빌 원전은 1986년 폭발 사고가 난 이후 가동이 완전히 중단됐지만 2400여명이 안전 관리를 위해 일해왔다.
러시아는 이날 키이우 등 5개 도시에서 민간인이 안전하게 빠져나갈 통로를 제공하겠다며 북동부 수미와 동부 마리우폴에서는 러시아 쪽뿐 아니라 우크라이나 쪽으로도 이동이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러시아와 벨라루스 쪽으로 빠져나갈 수 있는 통로만 제시했다며 안전통로 제안을 거부한 바 있다.
자포리자 원전 등이 장악되며 우크라이나 에너지부는 7일 현재 전국에서 전기를 공급받지 못하는 인구가 74만2천여명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동부 도네츠크주의 상황이 가장 나빠 “23만3천명에 대한 전기 공급이 완전히 끊겼다”고 설명했다. 가스 공급을 받지 못하는 주민은 23만8천여명으로 집계됐다.
신기섭 선임기자
marish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