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 마리우폴의 한 산부인과 병원이 심한 포격을 받은 뒤 만삭의 임신부가 얼굴 등이 상처투성이가 된 채 아래층으로 내려오고 있다. 마리우폴/AP 연합뉴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3주째로 접어든 가운데 두 나라의 외무 장관 회담이 10일(현지시각) 별다른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끝났다. 러시아군의 공격이 집중되고 있는 동부 마리우폴에서는 민간인들이 대피하지 못한 채 여전히 발이 묶여 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 장관과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 장관은 이날 터키에서 침공 이후 첫 고위급 회담을 열었으나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쿨레바 장관은 회담 뒤 라브로프 장관이 마리우폴 주변에서의 일시 휴전을 거부했다고 말했다. 라브로프 장관은 휴전이 이날 회담의 안건이 아니었다며 작전을 계획대로 지속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우크라이나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가입을 포기해야 한다는 기존 주장을 고수했다.
러시아군의 집중 공격을 받고 있는 우크라이나 동부 마리우폴에서 10일(현지시각) 소방대원들이 폭격으로 부서진 건물에서 주민을 구조하고 있다. 마리우폴/AP 연합뉴스
주요 교전 지역 중 최악의 상황에 처한 동부 마리우폴에서는 이날도 민간인의 대피가 이뤄지지 못했다. 바딤 보이첸코 마리우폴 시장은 40만명의 시민이 “이틀간의 지옥”을 겪으며 고립되어 있다고 말했다. 보이첸코 시장은 “30분에 한번씩 전투기들이 도시 상공에 나타나며 민간인들을 죽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전날 마리우폴 어린이·산부인과 병원 폭격을 둘러싸고 두쪽은 진실 공방을 벌였다. 라브로프 장관은 우크라이나 과격 민족주의 무장 세력이 병원을 장악하고 이미 환자 치료도 중단한 상태라고 주장했다. 이고리 코나셴코프 러시아 국방부 대변인도 이날 브리핑에서 “마리우폴 병원 폭격 보도는 러시아를 비난하기 위해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마리우폴 병원에 군 병력이 주둔했다는 러시아의 주장은 거짓말”이라고 반박했다.
동북부의 수미와 주변 지역, 동부의 이줌, 수도 키이우 북부 지역에서는 4만여명이 대피에 성공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정부가 수미 등 7개 도시에서 주민을 대피시켰다며 러시아가 인도주의 통로를 공격해 고립된 주민들에 대한 식량과 의약품 보급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는 이날 키이우, 수미, 하르키우, 마리우폴, 체르니히우 등 5개 도시에 11일 오전부터 민간인이 빠져 나갈 수 있는 인도주의 통로를 열 것이라고 러시아 <인테르팍스> 통신 등이 보도했다. 통신은 미하일 미진체프 러시아국방통제센터 소장 말을 인용해 민간인이 러시아쪽 또는 우크라이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러시아군의 침공으로 우크라이나의 피해 규모가 1천억달러(약 123조원)를 넘겼다고 우크라이나 정부 경제고문이 밝혔다. 올레크 우스텐코 고문은 이날 미국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가 주관한 온라인 행사에서 이렇게 말하고 러시아 공격으로 우크라이나 기업의 절반이 완전히 가동을 멈췄다고 말했다.
신기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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