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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쇠사슬 가해자’보다 빨리 잡힌 진실규명 누리꾼…1명 여전히 ‘실종’

등록 2022-03-15 04:59수정 2022-03-15 08:39

[디비딥 차이나] 1월 말 충격적 영상 뜨자
중 누리꾼 우이·샤오취안
“언니 두려워 마, 동생들이 간다”
SNS로 소식 중계하며 현장으로

마을 주민은 출입 못하게 막고
경찰은 ‘영상 지워라’ 압박

중국 주류 언론들 외면한 사이
진실 추적한 그 1억회 넘게 조회
누리꾼 1명은 아직까지 행방 묘연
중국 여성 누리꾼 우이와 샤오취안이 지난 2월 초 중국 장쑤성 쉬저우시 펑현에서 자신들 차에 쇠사슬 여성 사건을 알리는 문구를 적었고(왼쪽) 거칠게 지워져 있다(오른쪽). 우이 웨이보 갈무리
중국 여성 누리꾼 우이와 샤오취안이 지난 2월 초 중국 장쑤성 쉬저우시 펑현에서 자신들 차에 쇠사슬 여성 사건을 알리는 문구를 적었고(왼쪽) 거칠게 지워져 있다(오른쪽). 우이 웨이보 갈무리

“잡혀가지 않았다면 (웨이보의) 프로필 사진을 바꿔주세요.”

“당신 무사한가요? 걱정됩니다.”

지난 1~2월 온 중국을 충격에 몰아넣었던 이른바 ‘쇠사슬 여성’ 인신매매 사건을 밝히러 직접 사건 현장에 간 중국 여성 누리꾼이 경찰에 구류된 뒤 돌아오지 않고 있다. 다른 여성 누리꾼 한 명도 2주 넘게 연락이 끊겼다가 이달 9일에야 집에 돌아왔음을 알렸다.

인신매매를 당한 여성이 아이 여덟을 낳고 지금껏 쇠사슬에 묶여 지낸다는 충격적인 사건은 지난달 23일 지역 간부 17명이 무더기 징계 처분을 받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하지만 이 사건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던 이의 행방이 묘연해지자 중국 누리꾼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 누리꾼은 “중국 정부는 쇠사슬 여성 사건의 가해자를 체포하는 데 두 달이 걸렸지만 이를 도우러 간 여성은 며칠 만에 체포했다. 경찰은 도대체 무엇을 하는 건가”라고 비판했다.

‘우이’와 ‘샤오취안’으로 불리는 두 30대 누리꾼의 중국판 트위터 웨이보(我能抱起120斤, 小梦姐姐小拳拳 등)를 바탕으로 이들에게 지난 한 달여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리했다. 이들에게 다이렉트 메일(DM)을 보내 인터뷰 요청을 했지만 답은 오지 않았다.

“언니 두려워하지 마, 동생들이 간다”

“우리는 지금 펑현의 여성을 도울 수 있는 활동을 조직하고 있다.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하다. 우리를 도와달라.”

중국 장쑤성에 사는 누리꾼 우이(31)는 지난달 3일 자신의 웨이보에 이런 글을 올렸다. 그가 말한 ‘펑현의 여성’은 1월 말 중국 동영상 공유 앱 더우인(틱톡)에 영상이 올라와 중국 사회에 충격을 안긴 이른바 ‘쇠사슬 여성’이다. 목에 쇠사슬이 걸린 채 시골 판잣집에서 발견된 중국 여성이 인신매매를 당해 십수년 동안 8명의 아이를 낳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중국 누리꾼들의 관심과 분노가 폭발했다.

그러나 올림픽을 앞두고 중국 주류 매체들은 이 사건을 철저히 외면했다. 보다 못한 우이는 안후이성의 또 다른 누리꾼 ‘샤오취안’과 함께 사건이 발생한 장쑤성 쉬저우시 펑현으로 달려갔다. 이들은 웨이보에 ‘언니 두려워하지 마, 동생들이 간다’라는 해시태그를 달았다.

우이와 샤오취안이 쇠사슬 여성에게 주려고 준비한 꽃과 선물들. 우이 웨이보 갈무리
우이와 샤오취안이 쇠사슬 여성에게 주려고 준비한 꽃과 선물들. 우이 웨이보 갈무리

“큰불은 누를 수 없다”

우이와 샤오취안은 4일 흰색 혼다 승용차를 타고 6시간을 달려 펑현에 도착했다. 쇠사슬 여성을 만나 격려 편지와 작은 선물을 건네려 했지만, 시작부터 벽에 부닥쳤다. 5일 쇠사슬 여성이 있는 곳으로 알려진 펑현의 정신병원에 찾아갔지만 경찰 4명이 출입을 막았다. 경찰은 일주일 뒤에나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여성이 살았던 펑현의 둥씨 집성촌도 삼엄하긴 마찬가지였다. 지역 경찰이 가족의 사생활을 보호한다며 외부인의 출입을 막았다. 우이는 웨이보에 “너희는 이 마을이 한 여성의 일생을 잔인하게 해치고, 중국의 법률과 여성의 인권을 멸시한 것을 아느냐”고 적었다.

우이와 샤오취안은 틈틈이 지역 주민을 만나 온라인에서 뜨거운 쇠사슬 여성 사건에 대해 물었지만, 10명 중 9명은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 이들은 사건을 알리기 위해 차 보닛과 옆문에 빨간 립스틱으로 ‘펑현의 둥아무개가 정신장애 여성을 성폭행해 8명의 아이를 낳게 하고 보조금을 받고 있다’고 적은 뒤 지역을 돌았다. 우이는 6일 “큰불은 누를 수 없다”고 웨이보에 적었다.

우이와 샤오취안은 ‘세계는 당신을 버리지 않았다. 자매가 왔다!’라는 문구를 계속 알렸다. 우이 웨이보 갈무리
우이와 샤오취안은 ‘세계는 당신을 버리지 않았다. 자매가 왔다!’라는 문구를 계속 알렸다. 우이 웨이보 갈무리

“우리는 국가와 당을 믿는다”

쉬저우 경찰은 우이와 샤오취안의 활동을 노골적으로 방해했다. 경찰은 이들이 묵는 호텔에 찾아와 글을 지우라고 명령했다. 이들이 거부하자, 몇차례 더 요구한 끝에 차에 쓴 글을 강제로 지웠다. 경찰은 또 이들이 ‘온라인상에서 소요를 일으키고 있다’며 글과 영상을 지우라고 명령했다. 우이와 샤오취안은 거부했다.

이날 밤 우이의 웨이보는 정지됐고, 샤오취안의 웨이보는 삭제됐다. 우이의 더우인 계정도 규정 위반을 이유로 폐쇄됐다. 우이는 7일 새 웨이보 계정을 만들어 취재 중계를 이어갔다. 경찰은 우이와 샤오취안의 고향 가족에게까지 연락해 이들을 압박했다. 우이는 “아버지는 심장병과 고혈압이 있다. 아버지가 잘못되면 국가가 책임질 거냐”고 웨이보에 적었다.

경찰뿐만이 아니었다. 6일 밤 우이와 샤오취안이 묵던 호텔은 ‘방이 다 찼다’며 체크아웃을 요구했다. 이들은 영하에 가까운 2월의 날씨에 호텔에서 쫓겨나 차 안에서 자야 했다. 샤오취안은 생리통으로 진통제를 먹었다. 우이는 “이렇게 나오면 우린 파출소에서 먹고 잘 거다”라고 웨이보에 적었다. 샤오취안은 이런 시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국가와 당을 믿어야 한다”고 웨이보에 적었다.

이들은 다음날 다른 호텔에 투숙했지만, 경찰은 호텔이 신분증 확인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호텔 컴퓨터를 압수해 가버렸다. 경찰의 압박에 굴복한 호텔은 9일 오후 이들에게 나가달라고 요구했다. 우이가 ‘화장실에서 용변을 보고 있으니, 마치고 나가게 해달라’고 요구했지만 들어주지 않았다. 우이는 “오늘 결국 울고 말았다. 우리가 도대체 무엇을 했나. 나는 펑현에 온 지 닷새 만에 이렇게 무너졌는데, 의지할 곳 없는 쇠사슬 여성은 어땠을까”라고 웨이보에 적었다.

열악한 상황에서도 이들은 쇠사슬 여성에 대한 추적을 이어갔다. 쉬저우시는 10일 쇠사슬 여성의 남편과 동네 주민을 불법 감금과 인신매매 혐의로 체포했다.

우이와 샤오취안은 호텔에서 숙박을 거부당해 차에서 잠을 자야 했다. 우이 웨이보 갈무리
우이와 샤오취안은 호텔에서 숙박을 거부당해 차에서 잠을 자야 했다. 우이 웨이보 갈무리

“나를 팔아서라도 살아야 해”

아직 쇠사슬 여성을 만나지 못한 우이와 샤오취안은 병원 앞에 주차된 차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버텼다. 11일 밤 우이와 샤오취안은 경찰에 구류됐다. 이날 아침 우이가 병원 화장실을 이용하려 하자, 병원은 출입을 막았다. 이 과정에서 승강이가 벌어졌다. 우이는 병원 직원에게 휴대전화를 빼앗겼고, 이를 경찰에 신고하러 갔다가 이날 밤부터 연락이 끊겼다. 이들의 첫 구류였다. 우이가 사라지자 누리꾼들은 3천여개의 댓글을 달며 무사귀환을 기원했다.

우이는 일주일 만인 18일 구류를 마치고 나왔다. 그는 “내가 돌아왔다. 멋진 경험이었다. 앞으로 쭉 얘기할 테니 기대해달라”고 웨이보에 적었다. 이후 우이는 경찰서에서 겪은 체포 과정과 구타 경험, 경찰의 자백 강요 등을 털어놓았다. 그는 11일 경찰에 신고하러 갔다가 4~5명의 경찰에게 둘러싸여 얼굴에 검은색 가방이 씌워진 채 체포됐고, 몸에 녹음기 등이 있는지 몸 수색을 당했다고 했다. 우이는 “가방에 막혀 숨을 쉴 수 없었다. 이때부터 나는 경찰에 반항하지 않고 협조하기 시작했다. 나를 팔더라도 죽는 것보다 사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고 웨이보에 적었다.

우이는 이후 쇠사슬 여성 사건에 대한 추적과 함께 자신이 경찰에서 겪은 과잉 체포와 구치소의 비인권적 처사 등도 지속해서 털어놓았다. 그의 글은 1억회가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는 등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우이는 22일을 끝으로 글을 올리지 않고 있고, 샤오취안은 20일부터 글을 올리지 않았다. 중국 누리꾼들은 우이의 마지막 글에 4천여개의 댓글을 달며 그의 안부를 묻고 있다. 일부 누리꾼은 우이가 경찰에 체포됐다며 어서 석방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샤오취안은 지난 9일 자신의 웨이보에 강아지 사진을 올리며 복귀를 알렸다. 샤오취안은 댓글에 “나는 그저께 풀려났다.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적었다. 누리꾼들은 “무사하면 됐다”고 댓글을 달았다.

지난달 중국 사회의 공분을 부른 ‘쇠사슬 여성’이 발견되던 당시의 모습. 펑황망 갈무리
지난달 중국 사회의 공분을 부른 ‘쇠사슬 여성’이 발견되던 당시의 모습. 펑황망 갈무리

공안, 인신매매와 전쟁 선포

지난달 초중순 우이와 샤오취안이 펑현에서 동분서주하며 지역 당국, 경찰과 싸우는 동안 중국 언론은 이 사건을 외면했다. 베이징 겨울올림픽이 끝나고 사흘 뒤인 23일 장쑤성 당국이 이 사건의 진상을 공개하며 펑현 당 위원회 서기 등 17명을 면직 처분했고, 중국 매체들도 그제야 일제히 이를 받아썼다. 쇠사슬 여성은 윈난성 출신의 45살 양아무개로 세차례 인신매매로 장쑤성까지 팔려왔다. 그는 이곳에서 둥아무개와 결혼해 8명의 아이를 낳았고 2017년부터 조현병 증세를 보여 쇠사슬로 목이 묶인 채 지내왔다. 이런 발표가 이뤄지는 동안 우이와 샤오취안은 쉬저우시의 구치소에 갇혀 있었다.

중국 공안부는 지난 1일부터 연말까지를 부녀자·아동 인신매매 범죄 특별단속 기간으로 정하고 인신매매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지난 4일 시작된 중국 최대 정치행사 ‘양회’에서 중국 최고인민검찰원과 최고인민법원은 업무보고를 통해 인신매매 범죄에 대한 처벌 강화 의지를 나타냈다.

베이징/최현준 특파원 hao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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