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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마리우폴 주민들 “모든 것이 파괴됐다. 도시가 사라졌다”

등록 2022-03-21 11:22수정 2022-03-21 14:41

“좁은 지하실, 추위·스트레스로 사망자 속출”
“음식도 곧 동 날 상황…뉴스도, 정보도 끊겨”
탈출 그리스 외교관 “레닌그라드·알레포 같다”
러시아 항복 요구…우크라이나는 ‘결사항전’
최악의 인도주의 재앙에 직면한 우크라이나 남동부 마리우폴에서 20일(현지시각) 주민들이 물건을 담은 비닐 봉지 등을 들고 도시 탈출에 나서고 있다. 마리우폴/타스 연합뉴스
최악의 인도주의 재앙에 직면한 우크라이나 남동부 마리우폴에서 20일(현지시각) 주민들이 물건을 담은 비닐 봉지 등을 들고 도시 탈출에 나서고 있다. 마리우폴/타스 연합뉴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군의 최대 교전지인 남동부 도시 마리우폴 주민 30만명 이상이 20일 가까이 고립된 가운데 도시가 거의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2차 세계대전 때 완전히 파괴된 옛 소련 레닌그라드나 2012년 이후 시리아 내전으로 황폐해진 알레포에 버금가는 참상이 빚어지고 있다는 증언들이 이어졌다. 러시아는 더 이상의 인명 피해를 막기 위해 우크라이나군에게 항복하고 도시를 떠나라고 요구했고, 우크라이나군은 이를 거부해 ‘마리우폴의 비극’은 멈추지 않을 것으로 우려된다.

마리우폴에서 거리에 방치된 시신 수습을 돕고 있는 안드레이라는 주민은 20일(현지시각) <로이터> 통신에 러시아군의 폭탄에 직접 희생되기보다는 열악한 환경에서 극도의 긴장 상태로 버티다가 숨지는 이들이 훨씬 많다고 전했다. 안드레이는 “지하 대피소,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상황, 스트레스, 추위 같은 환경”이 생명을 앗아가고 있다고 호소했다. 그는 “군인들이 시신을 일단 차가운 지하실에 보관하라고 했지만 지하실은 이미 대피 주민들로 가득 찬 상태”라고 말했다.

자신의 집 지하실에 11일째 머물고 있는 대학 도서관 사서 이리나 체르넨코는 일주일이면 식량이 떨어질 것 같다며 이런 식으로 얼마나 더 버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모든 건물이 파괴됐으니 이제 지하실에서 어디로 갈 수 있겠냐”며 “인간처럼 살고 싶은 게 우리의 희망”이라고 말했다. 유치원 직원 나탈리아는 “뉴스도, 정보도 모두 끊겼다. 모든 것이 파괴되어 어떻게 살지 막막하다”고 털어놨다.

<에이피>(AP) 통신은 이날 마리우폴에서 기차를 통해 서부 르비우로 탈출한 주민들이 “도시가 사라져 버렸다”고 개탄했다고 전했다. 3주 동안 마리우폴 문화 궁전 지하실에서 13살짜리 아들과 머물던 마리나 갈라는 어머니와 조부모가 현지에 남아 있다며 “그들이 어떤 상황인지 전혀 모른다”고 말했다. 이 여성은 “식수, 전기, 통신이 모두 끊긴 채 버텼다”며 폭격을 당하는 와중에 야외에서 나무로 불을 때 음식을 조리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마리우폴 인근 도시 멜리토폴에서 마리우폴 주민들과 함께 탈출한 예레나 소우츄크는 마리우폴 사람들은 짐도 거의 챙기지 못한 채 몸만 빠져나왔다고 전했다. 그녀는 마리우폴에서 자동차로 탈출하는 이들을 본 적 있다며 “차만 봐도 마리우폴에서 나온 걸 알 수 있다. 마리우폴의 차들은 창문이 모두 깨진 상태였다”고 말했다. 일부 탈출민들은 러시아군이 러시아가 지배하고 있는 지역이 더 안전하니 그쪽으로 대피하라고 말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최근 마리우폴에서 철수한 그리스 외교관은 현지의 참상이 2차 세계대전 때 소련의 레닌그라드나 2012년 이후 내전으로 파괴된 시리아 알레포와 비슷하다고 말했다. 마놀리스 안드룰라키스 마리우폴 주재 총영사는 이날 그리스에 도착해 “마리우폴은 전쟁으로 완전히 파괴된 도시들의 하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로이터> 통신 등이 보도했다. 그는 “내가 본 광경을 앞으로는 아무도 보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러시아군도 마리우폴에서 인도주의적 재앙이 빚어지고 있다고 이례적으로 강조했다. 러시아 총참모부 산하 지휘센터인 ‘국가국방관리센터’ 지휘관 미하일 미진체프는 이날 브리핑에서 “끔찍한 인도주의적 재앙이 나타나고 있다”며 “마리우폴의 우크라이나군에 항복하라고 최후 통첩을 했다”고 밝혔다. 그는 마리우폴 동쪽과 서쪽 두 방향으로 21일 오전 인도주의 통로를 만들 예정이라며 우크라이나군은 무기를 내려놓고 이를 통해 도시를 떠나라고 통보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항복 요구를 단호하게 거부했다. 이리나 베레슈크 부총리는 “무기를 버리고 항복할 수 없다. 우리는 이미 러시아에 이를 통보했다”고 밝혔다.

러시아군이 마리우폴 시내에 진입하면서 시내 곳곳에서 교전이 계속되고 주민 400여 명이 대피한 예술학교 건물이 폭격을 당하는 등 마리우폴 상황은 계속 나빠지고 있다.

신기섭 선임기자 mari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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