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니아 항구도시 오데사에서 러시아의 전차 진입을 막으려 설치된 장애물 사이로 한 여성이 지나가고 있다. 오데사 등지에서는 러시아 첩자들이 준동할 거라는 불안감이 퍼지고 있다. 오데사/로이터 연합뉴스
러시아의 우크라니아 침공이 길어지면서 러시아 첩자들이 우크라이나 후방에서 준동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번지고 있다.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러시아 첩자들이 붉은색 전등이나 표시로 자신들의 위치를 알린다는 소문 등이 퍼지면서 낯선 이들에게 과민하게 대응하는 일도 나타나고 있다.
우크라이나 남서부 항구 도시 오데사에 사는 엔지니어 보단 밀코는 최근 자신의 집에 설치한 붉은색 조명 때문에 경찰 조사를 받았다고 영국 <비비시>(BBC) 방송이 26일(현지시각) 보도했다. 밀코는 “처음엔 이웃 주민이 찾아왔고 15분 뒤 경찰이 방문했다”며 “경찰서에 가서 증명서 검사를 받고 조사도 받았다”고 말했다. 밀코는 경찰 조사 뒤 아무 일 없이 풀려 났다며 “러시아 사람들이 붉은색 표시로 자신들의 위치를 알리고 있다는 ‘가짜 뉴스’가 빚은 피해망상”이라고 말했다. 오데사는 러시아군이 몇차례 폭격을 가했으나 주변에서 전투가 벌어지지 않는, 상대적으로 평온한 도시다.
<비비시>는 자사 기자들이 밀코를 만나고 돌아가는 도중 거리에서 증명서를 보여 달라고 요구하는 주민들과 맞닥뜨렸다고 전했다. 한 여성은 기자들에게 “당신들이 러시아 사람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여성은 “당신들, 여기서 뭐하는가? 어쩌면, 누군가 내일 폭탄을 터뜨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고 방송은 전했다.
오데사의 은퇴한 사업가인 드미트로 노바크는 매일 아침 동네를 돌며 러시아 첩자들의 소행으로 의심되는 표시들을 지우는 일을 한다. 그는 “해변에 있는 빈 건물에서 밝은 빛이 밤 하늘을 향해 비치는 걸 봤다. 이는 러시아 함대로 보내는 신호인 게 분명하다”고 말했다. 주민들의 신고를 받은 당국은 이 건물을 수색한 뒤 조명을 껐다.
오데사 경찰 간부 볼로디미르 칼리나는 “이런 반응은 피해망상이 아니다. 실제로 러시아 첩자들과 러시아를 돕는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있다. 이는 사실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거짓 정보를 퍼뜨리는 이들이 있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이는 불안을 부추기기 위한 러시아 쪽의 공작이라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 당국이 러시아 공작원으로 의심되는 이들을 체포하는 영상이 언론 등을 통해 잇따라 공개되면서, 주민들의 의심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다른 분쟁 지역과 달리 소셜미디어 사용이 아주 활발한 것도 불안감 확산에 일조하고 있다. 각 지역의 전쟁 상황은 물론 뜬소문이나 거짓 정보까지도 순식간에 전국으로 퍼지고 있다. 하지만, 러시아 첩자들이 조직적인 활동을 한다는 조짐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비비시> 방송은 지적했다.
신기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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