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군의 봉쇄로 고립된 우크라이나 동남부 마리우폴의 한 주민이 27일(현지시각) 전쟁을 피해 집을 떠날 준비를 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마리우폴/로이터 연합뉴스
러시아군의 도시 봉쇄로 인도주의적 재앙이 빚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 동남부 마리우폴에서 러시아군의 주민 강제 이주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영국 <비비시>(BBC) 방송은 27일(현지시각) 마리우폴 적십자 자원봉사자의 말을 인용해 수백명의 주민이 친러시아 반군 세력이 장악한 지역이나 러시아로 탈출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는 상황이라고 보도했다. 적십자 자원봉사자로 일한 이리나라는 여성은 “마리우폴 시 동부 지역에 사는 주민 대부분이 분리주의 세력인 ‘도네츠크공화국’ 통제 지역으로만 이동이 허용되고 있으며, 이동 뒤에는 도네츠크에 계속 머물지 또는 러시아로 옮겨갈지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일부 노인들은 자신들이 어디로 이동하는지, 왜 이동하는지도 모르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리나 베레시추크 우크라이나 부총리도 러시아가 협의 없이 러시아 통제 지역으로 이동시킨 주민이 4만명에 이른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러시아는 주민 강제 이주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이달 초부터 외부와 고립되어 있는 마리우폴에는 여전히 17만명의 주민이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이와 관련해 국제적십자위원회에 러시아 남부 지역에 사무소를 열지 말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우크라이나 의회 공중보건위원회의 마하일로 라두츠키 의장은 적십자위원회가 우크라이나 국경 인근 도시인 로스토프나도누에 사무소를 연다면 이른바 ‘인도주의 통로’를 통한 강제 주민 이주를 합법화해줄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적십자위원회는 강제 이주에 대한 직접적인 정보가 없다며 적십자위원회는 강제 이주를 돕는 활동을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적십자위원회는 또 로스토프나도누에 사무소를 열 가능성을 검토하는 것은 인도주의적 도움이 필요한 지역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러시아는 로스토프나도누에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 분쟁을 피해 탈출한 피란민들을 위한 임시 보호처를 운영하고 있다.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하르키우 등 일부 도시에서는 산모들의 조산이 급격하게 늘고 있다고 의사들이 밝혔다. 하르키우의 의사 이리나 콘드라토바는 자신이 운영하는 임산부 클리닉에서 최근 조산 비율이 50%에 달했다고 <비비시> 방송에 밝혔다. 콘드라토바는 “감염, 의료 지원 부족, 나쁜 영양 상태 등이 조산 위험을 높이고 있다”고 말했다. 전쟁을 피해 서부 도시 르비우로 이동한 산모들 가운데서도 조산 사례가 늘고 있다.
한편, 베레시추크 우크라이나 부총리는 체르노빌 원전 주변 지역에서 러시아군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았거나 낡은 무기들을 대량으로 옮기는 작업을 하면서 원전 폐기물 보관소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원전 폐기물 보관소 주변에서 러시아 군인들이 무책임하고 비전문적인 행동을 하고 있다”며 유엔 안보리에 체르노빌 주변 민간인 통제 지역을 비무장지대화할 것을 촉구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원전 근무자 교대가 중단된 지 일주일 가량이 지났지만 언제 근무자 교대가 이뤄질지 여전히 기약이 없다고 이날 밝혔다.
신기섭 선임기자
marish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