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4일 러시아군의 민간인 집단학살 현장인 수도 키이우 북서쪽 외곽 도시 부차를 방문해 기자들에게 발언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4일(현지시각) 러시아군의 민간인 집단학살 현장을 방문해 기자들에게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세계에 보여달라”고 호소했다. 러시아의 만행을 적극적으로 알리면서 전세계의 더 강력한 지지를 이끌어내려는 행보다. 그는 우크라이나의 여러 지역들에서 집단학살이 벌어졌다며, 이로 인해 러시아와의 평화협상이 더 어려워졌다고 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수도 키이우 북서쪽 37㎞의 소도시인 부차를 방탄복 차림으로 방문했다. 이곳은 지난주 러시아군이 퇴각하면서 최소 수백명의 민간인을 살해해 매장하거나 길거리에 버려둔 만행의 현장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현장에 동행한 미국 <시엔엔>(CNN) 방송 등 내외신 기자들에게 “우리는 당신들이 여기에서 벌어진 일을 전세계에 보여주기를 바란다. 러시아군이 한 일, 러시아가 평화로운 우크라이나에서 한 일을 보여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이는 전쟁 범죄이며 국제사회에서 제노사이드(집단학살)로 인정될 것”이라며 “여기서 벌어진 일을 본 상황에서 (러시아와) 협상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부차 말고도 우크라이나의 여러 지역에서 러시아군의 민간인 학살이 벌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별도의 화상연설에서 “보로댠카와 일부 다른 탈환 도시들에서 희생자 수가 훨씬 더 클 것이라는 정보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키이우, 체르니우, 수미 등지의 여러 마을에서 점령군들은 80년 전 나치 점령기간에도 볼 수 없었던 짓을 했다”며 “점령군들은 반드시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규탄했다.
실제로 부차에 이어 키이우 서쪽 45㎞의 모티진에서 마을 지도자와 가족이 숨진 채 발견됐다는 보도가 이날 나오는 등, 러시아군의 민간인 학살이 광범위하게 벌어졌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연설에서 러시아군이 퇴각한 지역의 참상을 전세계 언론이 적극 보도해줄 것을 호소했다. 그는 “우리는 부차와 다른 해방 지역에 대한 언론인의 접근을 최대한 제공한다”며 “러시아가 한 짓을 세계가 볼 수 있도록 가능한 많이, 수천명의 언론인이 여기에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우리가 필요했던 군용기, 탱크, 대포, 미사일방어 무기, 대함무기 등이 있었다면 수천명의 목숨을 구했을 것”이라며 서방이 추가로 무기를 제공해줄 것을 호소했다.
황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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