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현지시각) 유엔총회에서 통과된 러시아의 유엔 인권이사회 자격 정지 결의안 표결 결과가 회의장에 표시되어 있다. 유엔본부/로이터 연합뉴스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민간인을 대량 학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러시아가 7일(현지시각) 유엔 인권이사회 이사국 자격을 정지당했다.
유엔 총회는 이날 긴급 특별총회를 열어 러시아의 인권이사회 이사국 자격을 정지하는 결의안을 찬성 93표, 반대 24표, 기권 58표로 가결했다고 <에이피>(AP) 통신 등이 보도했다. 이에 따라 러시아는 지난 2011년 반정부 시위대를 폭력 진압한 리비아에 이어 두 번째로 인권이사회에서 쫓겨난 나라가 됐다. 5개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가운데 유엔 산하 기구에서 자격을 정지당한 건 러시아가 처음이다.
스위스 제네바에 본부를 둔 유엔 인권이사회는 유엔 가입국의 인권 상황 점검과 인권 개선을 위한 상설 기구이며, 유엔 회원국 가운데 47개국이 이사국으로 선출돼 활동하고 있다. 러시아의 이사국 임기는 2023년까지다.
미국은 러시아군이 점령했다가 철수한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인근 도시 부차에서 수많은 민간인 학살 피해자 시신이 확인된 이후 러시아의 이사국 자격을 정지하는 결의안을 추진했다. 이날 표결에서 중국, 북한, 이란, 시리아 등은 반대표를 던졌다.
이날 통과된 결의안은 “우크라이나에서 진행 중인 인권과 인도주의 위기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다”며 “이런 인권 침해는 러시아의 인권이사회 자격을 박탈하기에 충분하다”고 지적했다. 린다 토마스그린필드 유엔 주재 미국 대사는 이번 표결이 역사적인 순간이라며 “우리는 희생자들과 생존자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을 것이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집단적으로 보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또 러시아는 “정당한 이유가 없고 부당하며 부도덕한 전쟁”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표결에 앞서 세르히 키슬리차 유엔 주재 우크라이나 대사는 러시아가 “전쟁 범죄와 인륜에 반하는 범죄에 해당하는 끔찍한 인권 침해와 학대 행위를” 저질렀다며 결의안에 찬성할 것을 회원국들에 촉구했다. 그는 “러시아는 단지 인권 침해만 자행한 것이 아니라 국제 평화와 안보의 기반도 흔들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맞서 겐나디 쿠지민 유엔 주재 러시아 차석 대사는 “조작된 사건에 근거한 거짓 혐의를 부인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 결의안이 현장의 실제 인권 상황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며 “미국이 국제 관계에서 지배적인 지위를 유지하고 인권 식민주의 시도를 지속하기 위해 결의안을 주도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결의안이 통과된 뒤 러시아의 인권이사회 탈퇴를 선언했다.
이날의 표결 결과는 지난달 2일과 24일 유엔 총회가 통과시킨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관련 결의안에 비해 찬성표가 훨씬 적은 것이었다. 유엔은 지난달 2일 러시아에 즉각적인 휴전과 철군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찬성 141표의 압도적인 지지로 통과시켰고, 24일에도 휴전과 민간인 보호를 촉구하는 결의안을 찬성 140표로 통과시킨 바 있다.
신기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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