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10일(현지시각) 프랑스 대선 1차 투표 뒤 지지자들 앞에 나와 손을 들어 보이고 있다. 파리/로이터 연합뉴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10일 치러진 프랑스 대통령 선거 1차 투표에서 무난하게 1위를 기록했지만, 2주 뒤 결선에선 승리를 장담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2위로 결선에 오른 극우 국민연합의 마린 르펜 후보가 민생 문제에 집중하면서 추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데다 5년 전과 달리 좌우 정치 세력 간의 ‘반극우 연대’ 분위기가 약해졌기 때문이다.
프랑스 내무부는 11일 오전 대선 1차 투표 개표가 97% 진행된 가운데 마크롱 대통령이 27.6%를 득표해 1위를 기록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르펜 후보는 23.41%로 2위, 극좌파 장뤼크 멜랑숑 후보가 21.95% 득표로 3위에 올랐다. 이에 따라 24일의 대선 결선투표는 마크롱 대 르펜의 대결로 치러지게 됐다. 두 사람은 2017년에도 결선투표에서 맞붙었는데, 당시엔 마크롱이 66.1%를 얻으며 르펜(33.9% 득표)에게 쉽게 승리했다.
하지만 이번 결선투표는 5년 전과 양상이 전혀 달라지면서 초접전이 예상된다고 <프랑스24> 방송 등이 지적했다. 방송은 1차 투표에서 마크롱 대통령의 득표율이 5년 전 1차 투표 때보다 3%포인트 높아졌지만 축제 분위기와 거리가 멀다고 전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날 지지자들에게 “착각하지 말자. 아직 결정된 것이 없다”며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여론조사기관 프랑스여론연구소는 결선투표에서 마크롱 대통령이 51%의 득표율로 르펜 후보를 불과 2%포인트 앞설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입소스의 조사에선 두 사람의 격차가 54 대 46으로 좀 더 벌어질 것으로 나타났다.
정치 분석가들은 상황이 5년 전과 전혀 다른 이유로 전통 중도 좌우파가 몰락하면서 극우 세력을 저지하려는 중도 세력의 움직임이 유권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점을 꼽았다. 전통 우파인 공화당의 발레리 페크레스 후보는 1차 투표에서 불과 4.79%, 전통 좌파인 사회당의 안 이달고 후보는 단 1.74%를 얻는 데 그쳤다. 두 후보는 결선투표에서 마크롱 대통령 지지를 선언했다.
프랑스 국민연합의 마린 르펜 대선 후보가 10일(현지시각) 대선 1차 투표 뒤 지지자들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파리/로이터 연합뉴스
르펜 후보가 극우 색채를 자제하고 물가 급등 등 민생 문제에 집중하면서 대중의 경계심이 많이 완화된 것도 달라진 점이다. 르펜 후보는 에너지에 대한 부가세를 낮추고 고속도로 통행료 인하를 위해 고속도로를 국유화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우는 등 그동안 집착하던 ‘이념’ 대신 ‘민생’을 중시하는 정치인으로 변신을 꾀했다. 이날도 마크롱 대통령이 초래한 혼란을 끝내고 프랑스의 균열을 치유하겠다며 자신을 사회 통합을 위한 후보로 부각시키는 데 힘을 기울였다. 입소스의 조사 책임자 마티외 갈라르는 “정치인들 사이에서는 (극우에 맞서는) ‘공화국 전선’이 작동하고 있지만, 유권자들이 이를 따를지는 미지수”라고 지적했다. 코로나19 대유행에 이은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에너지 가격 등 물가가 급등하면서 서민들의 삶이 어려워지고, 마크롱 대통령이 국내 정치보다 우크라이나 등 대외 문제에 집중한 점도 고전을 면하지 못하는 요소로 꼽힌다.
나아가 1차 투표에서 멜랑숑 후보가 득표율 20%를 넘기는 등 극좌 지지세가 강해진 것도 마크롱 대통령에게는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멜랑숑은 이날 극우 세력에게 표를 주면 안 된다며 마크롱 대통령에 대한 ‘간접 지지’를 선언했지만, 여론조사기관들은 좌파 지지자 상당수가 결선투표에서 기권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했다. 여론조사기관 해리스 인터랙티브의 장다니엘 레비 전략 분석가는 “좌파 유권자들은 마크롱 대통령이 너무 우파로 기울어져 있다고 느낀다”며 “그가 좌파 유권자들에게 신뢰를 얻는 게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결선투표의 향배는 남은 2주 동안 마크롱 대통령이 실망한 좌파와 중도파의 표심을 잡을 묘수를 찾을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멜랑숑 지지자인 20대 여성 레아 드뤼에는 <로이터> 통신에 “마크롱의 정치가 극우를 강화시켰다”며 지난번 결선투표에선 마크롱을 찍었으나 이번엔 기권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기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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