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소방관들이 5일(현지시각) 러시아의 미사일 공격으로 파괴된 철도 화물 관련 시설에서 불을 끄고 있다. 키이우/EPA 연합뉴스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장거리 공격용 고속기동포병로켓시스템(HIMARS)을 지원하기로 하자 러시아군이 40일 만에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미사일로 공격한 데 이어 동부 돈바스에서도 공세를 강화했다. 전쟁은 다시 확전 국면을 맞고 있다.
우크라이나군과 러시아군이 5일(현지시각) 동부 돈바스의 핵심 교두보 중 하나인 슬로우얀스크와 바흐무트에서 격렬한 전투를 벌였다고 미국 <시엔엔>(CNN) 방송이 보도했다. 우크라이나군 작전 참모는 러시아군이 도네츠크주 북부 주요 도시 슬로우얀스크에서 북쪽으로 20㎞ 떨어진 지점에서 이날 포격 등을 재개했다고 밝혔다.
작전 참모는 또 슬로우얀스크에 대한 공격이 이어지는 가운데 루한스크주 핵심 도시인 세베로도네츠크 시내에서도 격렬한 공방이 이어졌다고 전했다. 이 도시는 대부분의 지역이 러시아군 손에 넘어갔다가 우크라이나군이 4~5일 반격에 나서 전체의 절반 정도를 되찾았다고 우크라이나군은 주장했다. 루한스크주와 도네츠크주의 방어에 핵심이 되는 도네츠크주 바흐무트에 대한 러시아군의 포격도 다시 시작돼 농기계 공장이 파괴됐다고 지방 정부 관계자들이 밝혔다.
이날 전투가 집중된 지역은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군의 진격을 저지하고 있는 도네츠크주 북부 지역이다. 러시아군은 전쟁 100일 만에 도네츠크주 남부와 루한스크주 대부분을 장악한 채 세베로도네츠크를 장악해 루한스크주 점령을 마무리하려 시도했다. 하지만, 이 도시에서 예상 밖의 반격을 당하자 도네츠크주 북부 지역을 통해 도시를 서쪽에서부터 포위하려 시도하는 것으로 보인다. 세베로도네츠크는 현재 서쪽을 제외한 3면이 포위된 상태다.
영국 국방부는 지난 24시간 동안 전개된 우크라이나군의 세베로도네츠크 반격이 러시아군의 작전 속도를 상당히 늦출 것으로 평가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영국 국방부는 러시아가 자국 군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세베로도네츠크 시내 전투에는 제대로 무장하지 못한 현지 반군 세력을 주로 동원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러시아군이 루한스크주 공격에 집중하면서 우크라이나군의 반격을 허용했던 남부 헤르손주에서도 러시아군의 공세가 다시 강화되고 있다. 우크라이나군 작전 참모는 최근 러시아군으로부터 탈환한 헤르손주 북부 빌라크리니치아에서 러시아군의 공격이 재개됐다고 밝혔다. 러시아군은 또 남부 흑해 연안 도시 미콜라이우를 크루즈미사일로 공격해 곡물 창고가 파괴됐다고 <시엔엔> 방송이 전했다. 미콜라이우는 흑해 최대 항구 도시인 오데사 등 흑해 서부 지역 방어를 위해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군과 맞서고 있는 곳이다.
러시아군이 완전 장악한 동남부 항구 도시 마리우폴에서는 주민들이 극심한 식수난에 시달리고 있다고 시 관계자가 밝혔다. 페트로 안드루셴코 마리우폴 시장 보좌관은 주민들이 식수를 얻기 위해서는 등록을 해야 하고 등록한 사람만 이틀에 한 번꼴로 식수를 제공받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 마리우폴에서 빠져나온 상태인 안드루셴코 보좌관은 “앞으로 기온이 상승하며 물 수위가 내려가면서 식수 부족은 더 심각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편, 볼로디미르 젤렌스크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자국 군인 전사자가 하루에 60~100명 수준이라고 밝혔다고 <에이피>(AP) 통신이 보도했다. 이는 베트남전에서 미군의 피해가 최대치를 기록했던 1968년의 하루 전사자가 50명에 약간 못 미쳤던 것과 비교할 때 상당히 큰 손실이라고 통신은 지적했다. 빅토르 무젠코 전 우크라이나군 참모총장은 “지금이 전쟁의 가장 중요한 순간 중 하나지만 아직 정점은 아니다”며 사상자가 더 늘어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신기섭 선임기자
marish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