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탐사보도 조직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위해 5조8천억원의 자산을 관리하는 비공식 네트워크 조직의 존재를 확인했다고 20일 밝혔다. 상트페테르부르크/타스 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네트워크 형태의 비공식 조직을 통해 45억달러(약 5조8천억원)에 달하는 자산을 관리하고 있는 정황이 드러났다.
동유럽 등에서 활동하는 탐사보도 단체 ‘조직 범죄와 부패 보도 프로젝트’(OCCRP)는 20일(현지시각) 러시아 독립 언론 <메두자>와 공동으로 푸틴 대통령의 개인 자금을 관리하는 느슨한 비공식 네트워크 조직의 존재를 파악했다고 밝혔다. 탐사 보도팀은 ‘푸틴의 은행’으로 알려진 ‘방크 로시야’와 긴밀하게 연결된 정보기술 기업 ‘모스콤스뱌즈’가 운영하는 전자우편 서비스에서 유출된 자료를 추적해 45억달러 규모의 자산을 관리하는 조직을 포착했다. 이 조직은 ‘LLCInvest.ru’라는 전자우편 계정을 이용해 상시적으로 협력하고 있으며, 여기에는 기업과 비영리 기관 86곳이 참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탐사팀은 푸틴 대통령의 친구 아들인 세르게이 루드노프가 소유한 기업 ‘볼나’도 이 조직에 관여한 것을 확인했다. 탐사팀이 확보한 대량의 전자우편 정보를 분석한 결과, 볼나와 상관 없는 기업 관계자들이 볼나의 재정 문제를 논의하는 내용이 확인됐다. 이런 식으로 서로 무관한 기업들의 관리자, 소유주, 직원들이 전자우편을 통해 수시로 연락을 취하며 협력하는 모습이 흔하게 확인됐다고 탐사팀은 밝혔다.
탐사팀은 이들이 관리하는 자산은 호화 저택, 전세 항공기, 요트, 거액이 든 은행 계좌 등이라고 폭로했다. 이 가운데 일부는 방크 로시야가 직접 소유하고 있으며, 다른 일부는 이 은행 이사들이나 주주들 명의로 되어 있었다. 소유자 가운데는 이 은행의 회장이자 최대 주주인 유리 코발추크도 있었다. 그는 푸틴의 ‘개인 은행가’로 알려진 측근이다.
이 네트워크 조직이 관리하는 자산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러시아 남부 흑해 연안 젤렌지크에 있는 1억유로(약 1350억원)짜리 저택이다. 이 저택은 푸틴의 측근인 러시아 재벌 아르카디 로텐베르그의 소유로 되어 있지만, 러시아 야권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는 이 저택이 푸틴 개인을 위해 건설됐다고 주장한 바 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전했다.
이 저택 주변에 있는 포도밭도 이 조직이 관리하고 있으며, 상트페테르부르크 인근의 이고르 스키 리조트도 푸틴과 관련된 자산으로 파악됐다. 이 리조트는 코발추크가 많은 지분을 소유한 기업인 ‘오존’ 소유로 등록되어 있다. 이 리조트는 2013년 푸틴의 딸이 결혼식을 한 곳이라고 <가디언>은 전했다. 이밖에 상트페테르부르크 인근에는 이 조직이 관리하는 두 개의 저택도 있는 것으로 탐사팀은 파악했다. 이 두 곳 모두 명목상으로는 푸틴의 친구나 관련 기업들 소유였다.
탐사 보도팀은 이 네트워크 조직에 관여하는 3개 비영리 단체는 ‘해양 전통 부활’, ‘농업 계획 개발’, ‘러시아 항공 전통 개발’ 등을 목표로 제시하고 있으나 실제 사업에는 거의 투자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3개 단체는 490억루블(약 1조1300억원)에 달하는 현금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 네트워크 조직은 10년 전 러시아 기업가 세르게이 콜렌스니코프가 폭로한 푸틴의 비자금 확보 방식과 아주 유사하다고 탐사 보도팀은 지적했다. 콜렌스니코프는 러시아 재벌들에게 ‘투자 펀드’에 수십억 루블을 넣게 하는 방식으로, 자신이 당시 총리였던 푸틴의 비자금을 확보했다고 폭로한 바 있다.
신기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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