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성장 이면에는 소수민족 탄압 등 적지 않은 논란들이 자리하고 있다. 사진은 2009년 신장위구르자치구에서 중국의 소수민족 차별 반대 시위 도중 시민 156명이 숨지는 등 불상사를 빚은 우루무치 유혈사태. 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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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전 대통령이 지난 9일 페이스북을 통해 추천한 신간 <짱깨주의의 탄생>이 대형 온라인서점 역사부문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며 적지 않은 관심과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중국 문제와 관련해 이 책이 비판하는 대상은 크게 둘이다. 하나는 국내의 혐중 정서를 자신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위해 악용하는 안보적 보수주의자들, 다른 하나는 중국 사회의 모순을 지적하며 “중국도 나쁘다”를 외치는 진보주의자들이다. 책은 미-중 충돌 시기 한국의 안보적 보수주의가 중국을 보는 독특한 시각, 신식민주의와 유사인종주의가 결합된 이데올로기를 ‘짱깨주의’로 명명한다. 한국 사회에서 구조화된 성격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책에선 대중화된 ‘짱깨주의’가 2차대전 뒤 1951년 샌프란시스코체제가 낳은 신식민주의 이데올로기의 현상이자, 가차 저널리즘(어떤 문제를 부정적 시각으로 유도하기 위해 선택적으로 편집하거나 꼬투리 잡는 보도 행태)의 결과물이라고 본다. 그러면서 보수 언론이나 <연합뉴스> 등 특정 국내 언론사의 잘못된 보도, 그리고 특파원들의 친서방 언론 베끼기 등 행태를 구체적으로 비판한다. 하지만 대중 정서를 음모론적으로만 인식하면 구조적 모순을 이해하기 어렵다.
소수집단이나 타민족에 대한 혐오와 차별, 배외주의가 강화되는 보편적인 원인은 경제위기에 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균열 이후 유럽에서 고조된 이주민 거부와 인종주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는 소수민족에 대한 차별과 학살 등 사건들은 하나같이 경제위기에 따른 일자리 부족과 긴축 재정을 배경으로 한다. 일본에서 극우 민족주의의 고조는 ‘잃어버린 20년’이 지속되는 과정에서 비롯됐고, 한국에서의 조선족 혐오 역시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확대됐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와 코로나19, 대중문화에서의 여러 논쟁이 이를 확대재생산한 것은 엄연한 사실이지만 핵심은 질 좋은 일자리가 부족하다는 데 있다.
이 책은 짱깨주의가 식민화, 타율적 해방, 냉전 편입, 시장주의적 수교 등 질곡을 거친 한-중 관계가 낳은 인식체계라고 그럴듯하게 설명하면서도, 자본주의체제가 낳은 위기 분석에선 경제 모순을 빼놓을 수 없다는 점을 놓친다.
샌프란시스코체제라는 거대하고 역사적인 문제를 설정하고, 서구 언론의 프로파간다에 막대 구부리기를 가해야겠다는 의지가 논증을 앞지르면, 진실은 뒷전이 될 수 있다. ‘미 제국주의보다 중국이 낫다’는 가설을 입증하겠다는 반대급부가 한쪽 눈을 가리고, 변화된 중국의 모순을 보지 못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가령 글쓴이는 대다수 중국인이 사용하는 위챗 앱이 “이중 삼중의 개인정보 보호장치가 있다”고 확언한다. 그러나 토론토대학 시티즌랩의 위챗 분석에 따르면, 비중국 계정에서 중국 계정으로 전송하는 문서나 이미지들은 실시간 감시된다. 특히 인공지능 알고리듬에 의해 민감 콘텐츠로 파악될 경우 전송 자체가 차단된다. 이는 여러차례 실험으로 검증된 바 있다. 2018년 여름 나는 베이징대 마르크스주의학회 학생들이 만든 단체방에 초대됐는데, 이 방은 불과 40분 만에 강제 폭파됐다. 중국에선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지난 9년 동안 중국은 ‘일대일로’(육·해상 실크로드를 잇는 중국 중심 경제벨트)라는 비전하에 4조달러(약 5200조원) 규모로 2600여개의 국외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41개의 송유관, 203개의 교량·철도를 건설했다. 중국 정부가 아프리카 투자를 “중국굴기”로 치장하자, 일부 지식인들은 자국이 제국주의의 길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을 갖고 아프리카 투자의 이윤율과 독과점 여부를 분석했다. 칭화대학 옌하이룽 교수는 오늘날 중국 자본의 국외 사업이 자본주의적 이윤 논리에 따른 투자인 것은 사실이나 이윤율이 낮기 때문에 제국주의 혹은 신식민주의 관계로 볼 순 없다고 말한다. 역사학자 양허핑은 국영기업이 정치적 목적을 갖고 주도하기에 이윤율이 낮은 것은 사실이지만, 투자 비중이 빠르게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제국주의적으로 변모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신장위구르자치구 인권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폭로된 중국 정부 문건이나 재교육소에 강제 수감됐다가 풀려난 이들의 증언으론 부족한 걸까? <짱깨주의의 탄생>은 이 문제를 미국의 공작에 의한 근거 없는 낭설로 손쉽게 치부하고, 위구르족과 카자흐족 시민들을 도맷금으로 분리주의자로 취급한다. 현장 연구를 거쳐 <인 더 캠프>(In the camps)를 저술한 인류학자 대런 바일러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구금시설 300여곳에 150만명에 이르는 위구르족, 카자흐족, 후이족 사람들을 배치했다. 이슬람학자인 박현도 서강대 교수에 따르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동투르키스탄 이슬람운동(ETIM)을 테러조직으로 지정한 것은 9·11 테러 직후 중국 정부의 노력으로 이뤄졌다. 당시 미국 정부는 아프간 침공에 대한 안보리 상임이사국 중국의 지지를 얻기 위해 어물쩍 중국 요구를 수용했고, 중국 역시 아프간 침공에 대해 눈감아주었다. 그렇다면 미국의 아프간 침략과 중국의 반인권적 소수민족 탄압을 함께 비판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냉전시대의 지정학 구도를 넘어서기 위해선 친미냐 친중이냐를 넘어 제3의 자리를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민족주의적 혐중 정서를 넘어 우리 사회의 진짜 모순에 대면하기 위해선 대륙에서 저항하는 민중, 억압받는 저층인구(低端s人口)의 존재를 상기해야 한다. 지난 10여년, 중국 사회에선 거대한 변화가 일었다. 아이폰을 만드는 폭스콘 공장에서는 10대 후반 노동자 14명의 연쇄 자살로 큰 논란이 일었고, 신세대 농민공들이 초국적 자본의 착취에 맞서 연달아 파업에 나서기도 했다. 장시간 노동과 과로사, 청년 실업과 직장 내 성폭력 문제 역시 동아시아의 평범한 사람들이 공히 마주하고 있는 현실이다. 몫 없는 자들이 이런 공통의 모순을 대면하고 연대할 때, 전선은 ‘인종’과 ‘국경’이 아니라, 사회경제적 모순에 세워진다.
이 두꺼운 저작의 결론이 시장주의적 동아시아 통합론에서 끝나는 게 아쉬운 것은 그 때문이다. 중국의 억만장자들 혹은 공산당 고위 간부들과 한국 내의 비정규직 청년이 평화체제를 위해 연대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바닥을 향한 경주’로 내모는 기업 권력에 맞서 양국의 청년 노동자들이 함께 목소리를 낼 때, 진정한 대항 헤게모니를 구축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동아시아 단일 시장 구축이 샌프란시스코체제에 대항하는 체제로 작동할 수도 있다는 글쓴이의 주장은 몽상에 그칠 수밖에 없다. ‘짱깨주의’를 내세운 보수주의자들과 이 책의 논리 사이에 깻잎 한장의 차이도 느껴지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동아시아 연구활동가
플랫폼C 활동가. 동아시아 이야기를 씁니다. 각 사회의 차이를 이해하고, 같은 꿈을 지향하자(異牀同夢)는 의미로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상을 품은 동아시아의 꿈(理想東夢)이라는 뜻도 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