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미사일 공격으로 최소 23명이 사망하고 100여명이 부상당한 우크라이나 서부 도시 빈니차 도심에서 우크라이나 소방관들이 구조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 공격을 집중하던 러시아가 이번엔 서부 도시 빈니차에 미사일을 쏘아 최소 23명이 사망하고 100명 이상이 다쳤다.
14일(현지시각) <에이피>(AP) 통신 등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재난당국은 이날 오전 흑해 러시아 잠수함에서 발사된 칼리브르 순항 미사일이 수도 키이우에서 남서쪽으로 268㎞ 떨어진 도시 빈니차의 상점가, 주택가를 공격했다고 밝혔다. 병원, 아파트 등 민간 시설에 떨어진 미사일로 민간인 최소 23명이 사망하고 100명 이상이 다친 것으로 전해졌다. 실종자도 39명에 이른다. 이호르 클라이멘코 경찰청장은 “현재까지의 사망자 중 10살 미만의 어린이도 3명 있으며, 사망자의 주검 6구만 신원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사상자와 실종자 등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미사일은 빈니차 도심의 민간 건물을 타격하고 주차장에도 화재를 일으켜 주차된 차량 50대가 불탔다.
현장에 있던 빈니차 주민 스비틀라나 쿠바스(74)는 <에이피>에 공격받은 건물은 “의료 기관 건물이었다. 공격으로 가장 바깥쪽에 있는 문이 찢어졌다. 귀가 먹먹하고 머리가 윙윙거렸다”라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우크라이나의 대도시 중 하나인 빈니차는 인구 37만명이 살고 있다. 지난 2월 말 전쟁 발발 이후 러시아가 공격을 집중하고 있는 동부 지역 사람들 수천여명이 빈니차로 피신했다. 동북부 지역 하르키우에서 지난 3월 이 도시로 피난 온 카테리나 포포바는 이 미사일 공격으로 또다시 절망에 빠졌다. 그는 “예상치 못한 일이다. 이제 우리는 다시 집이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날 밤 방송 연설에서 “러시아가 ‘군사적 가치’가 없는 지역에 의도적으로 민간인에게 미사일을 겨누고 있다”며 “러시아를 테러국으로 선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데니스 모나스테르스키 내무장관도 “이번 공격은 우크라이나군이 동쪽에 버티고 있는 동안 (서부에서) 우크라이나를 위협하기 위한 전쟁 범죄”라고 말했다.
키이우 주재 미국 대사관은 이날 우크라이나에 남아 있는 모든 미국 시민에게 즉시 떠날 것을 촉구하는 보안 경보를 발령했다. 서부 지역을 포함한 우크라이나 전역이 러시아의 군사적 표적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우크라이나 군사평론가 올레 즈다노프는 “러시아가 오데사 지역과 크레멘추크, 차시브 야르 등 다른 지역을 공격할 때도 이번과 같은 전술을 사용했다”면서 “러시아는 계속 민간인들을 살해할 것이라는 걸 보여주기를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는 민간인 시설을 표적으로 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에브게니 바르가노프 러시아 유엔 상임이사관은 이날 연설에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군사 목표물을 공격할 뿐이다. 빈니차 공습은 우크라이나군이 무장을 준비하는 장교 숙소를 목표로 했다”고 말했다.
한편, 우크라이나 곡물 수출에 대한 봉쇄 해제를 협상하는 4자 회담이 개최된 날 러시아의 공격이 발생했다. <로이터>는 15일 이번 공격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평화 협약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보여준다고 보도했다. 이날 러시아, 우크라이나, 터키와 유엔(UN) 등 4자 대표는 다음주께 곡물 수출을 위한 공동 조정센터를 이스탄불에 세우는 방안에 최종 서명할 것으로 예측됐다. 하지만, 이 공격으로 전망이 다시 어두워졌다고 통신이 밝혔다.
김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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