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오 드라기 이탈리아 총리가 지난달 26일 독일에서 열린 주요 7개국 회담에서 발언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이탈리아 연립정부가 민생 정책을 둘러싼 갈등으로 붕괴 위기에 직면하면서 마리오 드라기 이탈리아 총리가 사퇴 의사를 밝혔지만, 대통령이 이를 반려했다. 영국의 보리스 존슨 내각이 물러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유럽의 또다른 주요국인 이탈리아도 큰 혼란에 빠졌다.
14(현지시각) <에이피>(AP) 통신 등에 따르면, 이탈리아 총리실은 마리오 드라기 총리가 이날 내각회의에서 “그동안 연립정부를 지탱해온 국가적 연대가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사임 입장을 밝혔다고 전했다. 드라기 총리는 이날 민생법안과 관련한 상원의 신임 투표에서 원내 최대 정당인 오성운동이 불참한 것을 확인한 직후, 세르조 마타렐라 대통령에게 사직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세르조 마타렐라 대통령은 사직서를 수리하지 않고 의회의 뜻을 다시 모을 방법을 찾으라고 주문했다. 이탈리아 대통령실은 성명을 통해 “대통령은 드라기 총리에게 의회로 돌아가 여전히 확고한 지지를 얻을 수 있는지 알아보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드라기 총리는 오는 20일 의회에 출석해 구체적인 법안이 아닌 드라기 정부의 생존 가능성에 관해 지지를 공식 호소할 전망이라고 통신은 보도했다.
연립정부가 붕괴 상황에 직면한 것은 에너지 위기와 물가 상승에 대한 대응으로 드라기 정부가 260억유로(약 34조4996억원)의 민생지원 법안을 마련한 것에 대해 오성운동이 반대 의사를 밝히면서다. 이 법안과 관련한 상원의 신임 투표일인 14일 오성운동 의원들은 지원 규모가 적다며 집단적으로 불참 의사를 밝히고 법안을 ‘보이콧’했다. 법안은 172대 39로 가결됐으나 원내 최대 정당이 드라기 내각에 대한 협조를 거부한 것으로 해석되자 이날 드라기 총리는 대통령에게 사직서를 제출했다.
14일 오성운동 상원의원들이 불참한 채 진행된 정부의 민생법안 신임 투표. EPA 연합뉴스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출신의 경제전문가인 마리오 드라기 총리는 지난해 1월 사임한 주세페 콘테 전 총리의 후임으로, 코로나19 팬데믹 사태, 경제 위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주요 현안에 대응해왔다. 콘테 전 총리가 대표를 맡은 정당 오성운동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 등을 놓고 드라기 총리와 다른 의견을 내세워왔다.
드라기 총리에게 우호적인 중도좌파 성향의 민주당 대표 엔리코 레타 전 총리는 트위터를 통해 “드라기 내각에 대한 의회 신임을 확인할 수 있는 닷새의 시간이 주어졌다”고 말했다.
올해 1월 재선에 성공한 세르조 마타렐라 대통령은 지난해 1월 콘테 전 총리가 연합정부 붕괴로 사임하자 국정 위기를 타개할 인물로 드라기 총리를 지명했다. 이탈리아는 과도한 다당제, 소수 정당의 난립 등으로 연합정부가 안정적인 정국 운영을 하지 못하고 정치 혼란이 이어져 왔다.
김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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