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우랄 지역 대도시 예카테린부르크에 등장한 러시아 용병 기업 바그너(와그너)그룹의 광고판. 소셜미디어 텔레그램 갈무리
중동, 아프리카 등지의 분쟁 지역에서 비밀스럽게 활동하던 러시아 용병기업 바그너(와그너)그룹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장기화와 함께 공개 활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러시아 우랄 지역 최대 도시인 예카테린부르크 등에 와그너그룹의 옥외 광고판들이 등장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7일(현지시각) 보도했다. 한 광고판에는 “조국, 명예, 피, 용기, 와그너”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으며, 3명의 병사가 등장한 다른 광고에는 와그너그룹 인터넷 누리집 주소와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최근 몇몇 도시에서 볼 수 있는 이런 광고는 우크라이나 전투에 참가할 용병들을 모집하기 위한 공개 활동이라고 신문은 전했다. 와그너그룹을 오래 추적해온 러시아 언론인 데니스 코로트코프는 “그들이 더 이상 자신들의 존재를 숨기지 않기로 한 것 같다. 이제는 그들이 누구인지 모두 알게 됐다”고 말했다.
바그너그룹은 2014년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에서 친러시아 분리독립 세력이 내전을 일으킨 것을 계기로 구성됐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요리사라는 별명이 붙은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자금을 지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집단은 돈바스 내전 이후 활동 범위를 중동, 아프리카 등으로 넓혀, 시리아나 리비아 등지에서 러시아군이나 반군을 지원해왔다. 이 과정에서 민간인 고문 등 잔악 행위를 일삼아, 악명을 얻었다. 이런 전력 때문에 러시아 정부는 그동안 이 집단과의 관계를 부인해왔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침공이 장기화하면서 바그너그룹은 동부 돈바스 지역 전투에서 러시아군과 나란히 작전을 펴고 있으며, 최근에는 도네츠크주 부흘레히르스크 화력 발전소 점령에 공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이 집단을 거론하지 않던 러시아 언론들도 최근에는 언급하기 시작했다. 지난 5월 국영 방송에서 이 집단이 우크라이나 전투에 참가하고 있다는 걸 처음 언급했고, 러시아 최대의 타블로이드 신문 <콤소몰스카야 프라우다>는 지난주 바그너그룹의 부흘레히르스크 발전소 공격을 다룬 기사를 첫 면에 소개했다.
바그너그룹은 용병 모집을 위한 인터넷 누리집까지 개설했다가 최근 리투아니아의 인터넷 주소 서비스 업체에 의해 차단당하자, 소셜미디어를 통한 홍보에 힘을 쏟고 있다. 이 집단은 차단당하기 전 누리집에 올린 글에서 “이미 (루한스크주의) 포파스나를 해방시켰다. 전체 돈바스 해방을 위해 합류하라!”고 독려했다고 <가디언>이 전했다. 이 집단은 자사의 용병들이 러시아군 통상 임금보다 몇 배 많은 24만루블(약 520만원) 이상 받을 수 있다고 광고하고 있으며, 러시아 20여개 도시에 용병 모집 사무소까지 설치한 것으로 보인다고 신문은 전했다.
러시아 독립 언론 <메두자>는 지난달 바그너그룹의 신병 모집 네트워크를 이제 러시아 국방부가 대부분 통제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으며, 코로트코프도 러시아군과 바그너그룹이 구별되지 않는 지경까지 왔다고 지적했다. 코로트코프는 “러시아 국방부가 바그너그룹을 끌어들였으며, 이제는 한 집단에 가까워 보인다”고 말했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에서 잘 싸우지 못하자 국방부가 바그너그룹과의 협력을 강화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가디언>은 지적했다.
신기섭 선임기자
marish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