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이탈리아 마체라타주 치비타노바마르체시 도심의 거리에서 백인 남성의 폭행으로 숨진 나이지리아 출신 흑인 남성 알리카 오고추쿠를 애도하는 그림과 사진, 꽃 등이 사건 현장에 놓여있다. AP 연합뉴스
지난달 말 이탈리아에서 나이지리아 출신 이민자 흑인 남성이 백인 남성에 의해 살해된 사건이 발생한 뒤 이탈리아 전역에서 인종차별 반대 여론이 확산하고 있다. 총선을 보름여 앞둔 이탈리아 정국 흐름에 미칠 영향이 주목된다.
지난 7일 <에이피>(AP) 통신은 이탈리아 중동부 마체라타주에 위치한 해안 관광 도시 치비타노바마르체시 거리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한 뒤 꾸준히 인종차별 반대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시위대들은 최근 벌어진 살인 사건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인종차별 주의를 극복하자고 외치고 있다고 통신은 전했다.
하루 전 열린 두 시위 가운데 하나는 살인 사건의 희생자 가족들과 그들이 속한 나이지리아인 공동체가 주도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탈리아 전역에서 모여든 이민자 활동가들이 개최한 것이었다. 이민자 활동가 셀람 테스파예는 약 100명의 군중 앞에서 “사건을 인종차별에 의한 것으로 명명하지 않는 것은 인종차별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탈리아에는 인종차별이 명백히 존재한다”고 말했다.
지난 6일 이탈리아 마체라타주 치비타노바 마르체시에서 백인남성의 무차별 폭행으로 숨진 흑인 남성을 추모하며 인종차별을 극복하자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AP 연합뉴스
지난달 29일 이 도시의 상점가에서 한 흑인 남성이 백인 남성에 의해 무차별 폭행을 당한 뒤 사망에 이른 사건이 발생했다. 희생자는 해안 노점에서 손수건 등을 파는 나이지리아 출신 39살 남성이었다. 그는 교통사고로 장애인이 된 뒤 직업을 잃고 노점상으로 아내와 함께 두 자녀를 길러온 것으로 알려졌다. 용의자인 이탈리아 남성은 대낮 도심 한 복판에서 별다른 이유 없이 피해자를 구타해 사망에 이르게 했다. 이탈리아 경찰은 용의자로 32살 남성을 체포했으나 인종차별적 동기에 의한 살인 가능성은 배제했다. 경찰은 용의자가 공증된 정신 병력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행인에 의해 촬영된 사건 장면. 트위터 화면 갈무리
이탈리아의 인종차별 반대 시위는 사건 당시 영상이 인터넷을 통해 널리 공유되며 많은 시민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행인이 촬영해 경찰에 제공한 40초 가량 영상을 보면, 피해자가 폭행에 맞서 필사적으로 저항하는데도 지나가는 시민들이 이를 방관하며 개입하지 않는 모습이 그대로 담겼다. 현재 사건 현장에는 희생자를 애도하는 시민들이 두고 간 꽃과 사진, 그림 등이 남아있다. 소셜미디어 등에도 희생자를 애도하는 그림과 영상 등이 퍼지고 있다.
이탈리아에서 이민자 차별 반대 여론이 확산함에 따라 보름 뒤인 25일로 예정된 총선의 핵심 의제는 각 정당의 이민자 정책이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여론조사 1위를 달리고 있는 극우 정당 ‘이탈리아 형제들’과 이 정당이 이끄는 보수 동맹은 이민자에게 엄격한 정책을 내세우고 있다. 그 때문에 이민자 혐오 정서를 선거운동에 활용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전 이탈리아 총리이자 중도좌파 성향 정당 ‘비바 이탈리아’ 대표 마테오 렌치 상원의원은 지난달 30일 트위터에 “한 가정의 아버지가 극악무도하고 인종차별적인 방식으로 살해됐다. 이탈리아가 어떻게 가고자 하는지 성찰하지 않는 이런 선거 운동 분위기에 소름이 끼친다”고 비판했다.
김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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