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군인이 우크라이나 자포리자 원전 앞을 지키고 있다. 에네르호다르/로이터 연합뉴스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6일(현지시각)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교전으로 안전이 위태로워진 우크라이나 자포리자 원전 주변에 ‘핵 안전과 안보 보호구역’을 설정할 것을 촉구했다.
원자력기구는 지난 1일부터 자포리자 원전 현장에서 실시한 조사단의 활동 결과를 담은 보고서에서 이런 조처를 제안했다고 <에이피>(AP) 통신 등이 보도했다. 원자력기구는 보고서에서 자포리자 원전 주변 전투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며 “보호구역 설정은 모든 당사자들의 합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라파엘 그로시 원자력기구 사무총장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 대한 화상 보고에서 “우리는 지금 불장난을 하고 있으며, 매우 매우 파멸적인 일이 벌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도 이날 안보리에서 모든 군사 활동 중단과 비무장지대 설치를 거듭 촉구했다.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비무장지대 설치 방안에는 “러시아가 군인과 무기를 모두 철수하고 우크라이나군은 원전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내용”이 포함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바실리 네벤자 유엔 주재 러시아 대사는 러시아 정부가 비무장지대와 보호구역 제안의 세부 사항을 검토하길 원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크라이나인들은 즉각 (원전에) 진입해 모든 것을 망쳐놓을 것”이라며 “우리는 원전을 방어, 보호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보호구역 제안의 세부 사항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이 방안이 원전 비무장화 구상을 담고 있다면 지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날 밤 대국민 연설에서 원자력기구의 보고서는 원전 안에 러시아군과 장비가 있다는 걸 분명히 확인시켜줬다며 원자력기구가 원전 내 러시아군 철수를 명시적으로 지지할 것을 촉구했다.
원자력기구는 지난 1일 그로시 사무총장이 이끄는 14명의 원전 전문가들을 자포리자 원전에 파견해 현장 조사를 실시했으며 조사 이후 2명의 전문가를 현장에 상주시키고 있다. 원자력기구는 보고서에서 “원전 상황을 심각하게 우려하는 데는 변함이 없다”며 “(사용된 핵 연료 반출 등) 핵 확산을 우려할 만한 징후는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원전 피해 상황과 관련해 “조사단이 원전 주변 폭격 상황을 면밀하게 주시했다”며 터빈 윤활유 탱크와 사용된 연료를 운송하는 차량 보관용 건물 등 여러 건물 지붕이 파손된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또 원자로 1호기와 2호기 주변 등에서 러시아 군인들과 군 장비를 목격했다며 러시아 원전 운영 기업 로세네르고아톰 소속 전문가 집단이 현장에 있는 것도 확인했다고 공개했다. 보고서는 원전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직원들이 냉각용 수조 등 일부 지역 출입을 제한받고 있다며 이런 출입 제한은 원전의 정상적인 운용과 긴급 대응을 위험에 빠뜨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기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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