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노동기구(ILO)가 최근 발표한 ‘글로벌 현대판 노예제 평가:강제노동과 강제결혼’ 보고서에서 갈무리.
지난해 말 현재 전 세계적에서 ‘현대판 노예’ 상태에 빠진 인구가 5년 전보다 25%나 많은 5천만명에 이른 것으로 조사됐다.
국제노동기구(ILO)와 ‘워크 프리’(WF), 이주를 위한 국제기구(IOM)는 5일 ‘글로벌 현대판 노예제 평가: 강제노동과 강제결혼’ 보고서를 내어 이런 내용을 공개했다. 현대판 노예란 위협과 폭력 또는 사기 등에 의해 피할 수 없는 강제노동에 내몰린 이들과 강제결혼을 하게 된 이들을 일컫는다. 이번 보고서는 전세계 180여개 나라를 대상으로 조사했다.
보고서를 보면, 2021년 말 기준으로 현대판 노예는 4960만명이며, 이 중 2760만명은 강제노동에 시달리고 있고, 2200만명은 강제결혼에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수치는 5년 전 2017년 보고서에서 밝힌 약 4003만명이었던 것보다 거의 1천만명(25%) 늘어난 것이다. 특히 강제결혼은 5년 전보다 43%나 증가했으며, 강제노동도 11% 늘어났다고 보고서가 밝혔다.
보고서는 현대판 노예제가 늘어난 배경으로 코로나19, 기후 변화, 전쟁 등 무력충돌 등을 꼽았다. 특히 코로나19에 대해선 “강제결혼을 포함해 모든 형태의 현대판 노예제를 만들어내는 동력을 악화시켰다”고 평가했다. 코로나19로 인한 도시봉쇄 등 강력한 방역대책으로 하루벌이 노동자들이 일거리를 못 찾고 있으며, 많은 어린이들이 학교가 문을 닫는 바람에 학교 대신 생계 전선에 내몰렸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보고서의 데이터는 코로나19의 영향을 일부만 반영하고 있으며, 이 보고서에서 제시된 평가는 전염병이 끼친 영향의 전체 그림을 모두 보여주지 못한 것일 수 있다”고 밝혔다. 가이 라이더 국제노동기구 사무총장도 “어떤 이유도 이런 기본적인 인권유린을 정당화할 수 없다”며 “우리는 무엇이 필요한지 알며 우리가 할 수 있다는 것도 안다. 효과적인 국가정책과 규제가 기본적으로 필요하지만, 정부 혼자 이것을 할 순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8월 탈레반이 재집권한 아프가니스탄과 방글라데시, 콩고, 이집트, 인디아, 우간다. 예멘 등에서 어린이 강제노동과 강제결혼이 늘어났다. 그러나 더 부자인 나라들도 무풍지대는 아니었다. 강제결혼 4건 중 1건은 소득순위 중상위 나라에서 일어났다.
강제결혼의 3분의 2는 인구가 가장 많은 아시아·태평양에서 발생했다. 그러나 인구 당 강제결혼 발생 건수 비율로 보면 아랍 국가에서 1천명 당 5건으로 가장 많았다. 보고서는 강제결혼이 “오랫동안 지속해온 가부장제 관행”과 밀접히 연결돼 있다면서 강제결혼의 85%가 “가족의 압력”에 의한 것이었다고 밝혔다.
강제노동은 여덟 명 중 한 명이 어린이이며, 이런 어린이 중 절반 이상은 상업적으로 성착취를 당하고 있다. 또 강제노동의 86%는 개인 사업체에서 이뤄졌으며, 절반 이상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발생했다. 현대판 노예제의 종식을 내걸고 활동하는 민간단체 ‘워크 프리’는 성명을 내어 “현대판 노예제는 인간이 만든 문제이며, 과거 역사의 노예제와 현재 존재하는 구조적 불평등 두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고 밝혔다.
박병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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