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변화가 올해 유럽 등에서 발생한 것 같은 극심한 가뭄의 발생 빈도를 20배 이상 끌어올렸다는 연구가 나왔다.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인근의 해바라기가 가뭄으로 까맣게 시들었다. 스트라스부르/AP 연합뉴스
기후 위기가 올해 서유럽 등 북반구에서 발생한 수준의 극심한 가뭄 발생 빈도를 20배 이상 높였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국제 기후학자들의 모임인 ‘세계 기후 속성’(WWA) 프로젝트는 5일(현지시각) 누리집을 통해 공개한 논문에서 현재의 온난화가 더 악화되지 않고 유지된다면 올해 유럽, 미국, 중국 등에서 발생한 극심한 가뭄이 20년에 한번씩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인류가 유발한 기후 변화 위기가 없었다면 이런 극심한 가뭄은 400년에 한번꼴로 발생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6~8월 독일과 프랑스를 비롯한 서부·중부 유럽 지역은 극심한 가뭄과 폭염, 산불이 잇따라 발생했다. 미국에서도 서부, 북동부 등 곳곳이 심각한 가뭄에 시달렸으며, 중국도 60년 만에 가장 심한 가뭄을 겪었다.
스위스·인도·네덜란드 등 6개국 기후학자 등으로 구성된 연구팀은 가뭄과 기후 변화의 관계를 분석한 결과, 유럽의 경우 기후 변화 때문에 가뭄이 3~6배 더 자주 발생할 것으로 평가됐다고 지적했다. 지표에서 10㎝까지 토양의 경우 기후 변화가 가뭄 발생 빈도를 3~4배 높였고, 나무 등이 수분을 흡수하는 데 이용하는 지표 아래 2m까지의 경우 5~6배까지 가뭄이 늘어날 것으로 분석됐다. 적도 지역을 뺀 북반구 전체적으로는 기후 변화가 지표 아래 2m까지의 가뭄 발생 빈도를 적어도 20배 끌어 올렸고, 10㎝까지 토양의 가뭄 발생 빈도는 5배 정도 늘었다.
이번 연구에 참여한 스위스 취리히 연방 공대의 소니아 세네비라트네 교수는 “올해 여름의 가뭄은 인류가 유발한 기후 변화가 인구 밀집 지역과 주요 경작지에 가뭄 위험을 얼마나 높였는지 잘 보여줬다”고 지적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전했다. 연구팀의 일원인 영국 임페리얼칼리지의 프리데리케 오토 교수는 “유럽의 가뭄이 농산물 생산 감소를 유발했으며, 이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곡물 위기를 맞은 가운데 발생했다는 점에서 특히 더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기후 학자들은 현재 지구의 기온은 산업화 이전에 비해 1.2℃ 높은 상황이며 앞으로 온난화가 더 진행될 경우 가뭄은 더 심각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고 <에이피>(AP) 통신이 전했다. 통신은 연구팀의 일원인 취리히 연방 공대의 도미니크 슈마허 교수의 말을 인용해, 지구 온도가 0.8℃ 더 올라가면 올해와 같은 가뭄이 북반구에서 매년 발생하고 서유럽에서는 10년에 한번꼴로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신기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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