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8월12일 나세리가 파리 샤를드골공항 제1터미널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소재로 제작된 할리우드 영화 <터미널>의 포스터 옆을 지나가고 있다. AFP 연합뉴스
할리우드 영화 <터미널>의 소재가 된 인물로 18년 간 프랑스 파리 샤를드골공항에서 살았던 남성이 공항에서 숨을 거뒀다. 향년 77.
12일 <에이피>(AP) 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이란 출신인 메헤란 카리미 나세리가 샤를드골 공항에서 심장마비로 숨졌다고 공항 관계자들이 밝혔다. 그는 1988년 입국 서류 미비로 프랑스 당국으로부터 입국 허가를 받지 못하자 샤를드골 공항 터미널에서 노숙생활을 시작했다. 우여곡절 끝에 입국을 허가받고 파리 보호소 등에서 2006년부터 지냈으나 사망 몇 주전에는 공항으로 다시 돌아온 상태였다.
그는 공항에서 지낼 때 벤치에서 잠을 자고 직원 시설에서 샤워를 하고, 지나가는 여행객들을 관찰하거나 잡지를 읽으며 지냈다. 직원들은 그에게 ‘알프레드 경’이라는 별명을 지어줬다. 1990년대에 샤를드골공항에서 일했던 한 의사는 그가 “이곳에 화석화됐다”고 진단했으며, 한 공항 창구 직원은 그를 “외부생활이 불가능해진 죄수”에 비유했다.
2004년 8월12일 나세리가 파리 드골공항 제1터미널에서 아침 일찍 면도를 하는 모습. AFP 연합뉴스
2004년 8월12일 나세리가 파리 드골공항 제1터미널에서 이른 아침 일찍 잠자리에 누워있는 모습. AFP 연합뉴스
18년간 공항에 머물자 그는 유명인사가 됐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배우 톰 행크스를 기용해 그의 이야기를 영화 <터미널>(2004년)로 만들었다. 제작사는 영화화하는 대가로 그에게 상당한 금액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생전에 자신이 공항에 머무르게 된 이유는 1974년 영국 유학을 위해 이란을 떠났는데, 이란 당국은 그가 왕정 반대 시위를 했다는 이유로 그가 이란에 돌아오자 여권 없이 추방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유럽 각국에 정치적 망명을 신청했지만 거부당하다가 1986년 유엔난민기구(UNHCR)로부터 난민 지위를 부여받았고, 1988년 어머니가 사는 영국으로 가던 중 난민 관련 서류가 든 가방을 분실하는 바람에 파리 공항에 머물게 됐다고 주장했다. 다만, 그의 이런 주장이 맞는지는 정확히 파악되지는 않는다. 프랑스 입국을 거부당했던 그는 십수 년 뒤 입국 허가를 받았지만 이때는 공항을 떠나는 것에 대한 불안감을 나타내며 공항에 수년간 더 머물렀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사망 몇 주 전 결국 공항으로 돌아온 그는 처음에는 갈 곳이 없어 공항에 머물렀지만, 나중엔 자신의 선택으로 공항에서 살게 된 것으로 보인다.
김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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