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육류 생산 농가들이 가축 성장 촉진용으로 쓰지 못하게 규정된 항생제를 여전히 남용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 오마하의 한 소 사육장. 오마하/신화 연합뉴스
미국의 육류 생산 농가들이 강력한 병원균 출현으로 보건 위기가 발생하는 걸 막기 위해 사용이 금지된 항생제를 여전히 남용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항생제가 사용된 소고기들은 주요 육류 가공 업체를 통해 대형 햄버거 체인이나 유통업체에 납품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영국 비영리 탐사보도 기관인 ‘탐사보도국’(TBIJ)과 일간 <가디언>은 21일(현지시각) 미국 정부의 미공개 육류 항생제 검사 보고서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카길·제이비에스(JBS)·그린베이 등 10대 육류 가공 업체에 납품된 소고기에서 여러 항생제가 검출됐다고 보도했다. 특히, 이 가운데는 세계보건기구(WHO)가 사용을 금지하도록 권고한 ‘최우선 중요항생제’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이들 항생제는 박테리아 감염 치료에 특히 중요한 약품들이어서, 이에 내성이 생긴 박테리아가 퍼져 나갈 경우 심각한 보건 위기를 부를 수 있다. 이 때문에 미국 정부는 지난 2017년부터 가축 성장 촉진용 항생제 사용을 금지하고 치료 목적에만 제한적으로 쓰도록 했다.
탐사보도팀은 미국 농림부 산하 ‘식품 안전 및 검사 서비스’(FSIS)가 2017년부터 올해까지 10대 육류 공급망을 대상으로 실시한 검사 결과, 모든 업체에서 최우선 중요항생제가 쓰인 육류를 확인됐다고 전했다. 제이비에스와 그린베이에 납품된 소고기 중 일부에서는 중요항생제가 최대 7가지까지 확인됐다. 제이비에스는 외식 체인 웬디스, 타코벨과 유통업체 월마트에, 그린베이는 유통업체 크로거에 주로 육류를 공급한다. 맥도날드에 육류를 공급하는 카길의 육류 일부에서도 5가지의 중요항생제가 나왔다.
검출된 중요항생제 가운데는 피부질환이나 뇌수막염 등의 치료제로 널리 쓰이는 세팔로스포린의 일종인 세프티오푸르도 있었다. 이 항생제는 소를 사육하는 농가들이 사료에 많이 섞어 먹이던 것이다. 미국 시카고 루리 아동병원의 감염병 전문가 새미어 파텔 박사는 “수십년전 3세대 세팔로스포린 계열 항생제에 강한 내성 반응을 보이는 신생아를 처음 확인한 바 있다”며 “요즘엔 이런 항생제가 듣지 않는 어린이들이 아주 많으며, 이는 놀라울 것도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항생제가 듣지 않는 박테리아가 번지면 심각한 공중보건 위험이 발생한다며 “내성 박테리아를 퇴치하기 위해 더 많은 항생제를 쓰고 이는 또다른 내성을 유발하는 악순환을 유발한다”고 지적했다.
미국 축산계의 항생제 남용은 항생제 판매 추세에서도 간접 확인된다. 탐사보도팀은 미국 정부가 가축 성장 촉진용 항생제 사용을 금지한 이후 축산용 항생제 판매가 3분의 1 가량 줄었지만 그 이후에는 판매량에 큰 변화가 없다고 지적했다. 수의사의 처방전만 확보하면 가축 질병 치료 명목으로 얼마든지 항생제를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수의사이자 공중보건 관련 자문 활동을 하는 게일 핸슨 박사는 “일부의 경우, 가축 성장 촉진을 위해 투여할 때와 똑같은 양을 쓰기도 한다”며 “성장 촉진용이건 치료용이건, 박테리아의 내성 형성에는 똑같은 영향을 끼친다”고 지적했다.
식품 업계에 대한 항생제 통제 강화를 주장해온 코리 부커 미 상원의원(민주당)은 “공장형 축산 업자들의 무자비한 항생제 사용이 공중 보건을 위협하는 주 요인”이라며 “거대 농업기업들은 항생제 남용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생산체계를 고착시켰다”고 비판했다.
신기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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