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리크스 설립자 줄리언 어산지 석방을 촉구하는 시위대가 지난 10월8일(현지시각) 영국 런던 시내에서 ‘인간 사슬’을 이룬 채 시위를 벌이고 있다. 런던/EPA 연합뉴스
2010년 11월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미국 기밀 자료를 보도하기 위해 협력했던 미국과 유럽의 5개 주요 언론 매체가 12년 만인 28일(현지시각) 위키리크스 설립자 줄리언 어산지에 대한 기소 취소를 촉구하는 공개 편지를 함께 발표했다.
미국 <뉴욕타임스>, 영국 <가디언>, 프랑스 <르몽드>, 독일 <슈피겔>, 스페인 <엘파이스>는 이날 공동 명의의 편지를 싣고 미국 정부가 어산지를 방첩법 위반 혐의로 기소한 것은 미국 수정헌법 1조가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를 위협하고 언론의 자유에 대한 위험한 선례를 만드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그동안 이 법에 따라 기소된 인쇄 매체나 방송 매체가 없었다는 점을 언급하며 이렇게 지적했다. 이들은 “공공의 이익을 위해 민감한 정보를 확보하고 공개하는 것은 언론인들의 일상적인 핵심 업무”라며 “이런 활동을 범죄화한다면 우리의 공공 담론과 민주주의는 약해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오스트레일리아 국적자인 어산지는 미 육군 정보분석병 첼시 매닝이 2010년 빼낸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 관련 보고서, 국무부 외교 기밀문서 등을 온라인 사이트 ‘위키리크스’를 통해 폭로했다. 애초 미국 정부는 어산지의 이런 폭로에 대해 법적 대응을 하지 않았지만,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인 2018년 컴퓨터 해킹을 통한 군사 기밀 유출 혐의로 그를 기소했다. 매닝이 국방부 컴퓨터에 저장된 암호를 해독한 뒤 기밀 자료를 빼내는 것을 어산지가 지원했다는 것이 기소 이유다.
5개 언론은 어산지가 민감한 부분을 삭제하지 않은 채 자료를 모두 공개한 행위를 자신들이 비판한 바 있으며, 자신들 중 일부는 기밀 문서를 빼내는 걸 도왔다는 기소 내용에 대해서도 우려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하지만 우리는 이제 (미국 정부가) 그의 기소를 계속 추진하고 있는 점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하기 위해 다시 뭉쳤다”고 밝혔다.
어산지는 영국에 머물던 2010년 스웨덴에서 성범죄를 저질렀다는 혐의로 체포되어 스웨덴으로 송환될 상황에 처하자, 2012년 런던 주재 에콰도르 대사관으로 들어가 망명자 신분으로 7년 동안 지냈다. 영국 정부는 미국이 어산지를 기소한 뒤인 2019년 그를 체포해 미국으로 송환을 추진하고 있으며, 어산지는 영국 법원의 송환 승인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며 맞서고 있다.
신기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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