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로렌스 리버모어 국립 연구소가 성공한 ‘레이저를 이용한 핵융합 실험’과 비슷한 방식의 핵융합 실험 장비. 뮌헨/dpa 연합뉴스
미국 과학자들이 ‘꿈의 에너지’로 여겨지는 핵융합 연구에서 획기적인 성과를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핵융합 에너지는 태양과 같은 항성(스스로 빛을 내는 별)에서 에너지가 만들어지는 방식이며, 상업화에 성공할 경우 탄소 배출과 방사능 오염 걱정 없는 에너지 대량 생산이 가능해진다.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 타임스>는 12일(현지시각) 미국의 주요 핵무기 연구 기관인 ‘로렌스 리버모어 국립 연구소’가 최근 2주 사이 실시한 핵융합 실험에서, 투입한 에너지보다 19% 많은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고 보도했다. 이 연구소의 과학자들은 수소 원자가 들어있는 캡슐 형태의 실험 장비 안에 강력한 레이저를 발사해 고온의 기체 상태(플라즈마)를 만들어냈다. 그 이후 아주 짧은 파장의 엑스선이 생성됐으며, 이를 통해 캡슐 내부가 뜨겁게 가열되면서 핵융합이 가능한 조건이 생성됐다고 신문은 전했다.
실험 결과에 정통한 관계자는 레이저를 만드는 데 2.1메가줄(줄은 에너지 단위)의 에너지가 들었고 생성된 에너지는 2.5메가줄이었다며, 정확한 자료 분석 작업이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이 연구소도 연구소 내 레이저 핵융합 연구시설인 ‘국립점화시설’에서 핵융합 실험이 성공했음을 확인하면서도 “분석 작업이 마무리되지 않아 정확한 에너지 효율을 단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1950년 대 이후 전세계의 많은 과학자들이 핵융합을 시도해왔으나, 아직까지 투입된 에너지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 사례가 없다고 전했다.
핵융합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1억℃ 이상의 고온 상태가 필요한데, 이런 고온 상태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에너지가 든다. 이 때문에 핵융합을 상용화하려면 핵반응이 자동으로 계속 이어지도록 유도함으로써 투입한 에너지보다 생성된 에너지가 더 많은 상태를 계속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어려움 때문에 많은 과학자들은 핵융합 발전소가 상용화하려면 앞으로도 몇십년은 더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핵융합은 방사능 오염 위험이 없다는 점에서 현재 핵무기나 원자력 발전에 쓰이는 핵분열 기술보다 훨씬 안전한 것으로 평가된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핵융합이 상용화하면 탄소 배출 없이 많은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라고 지적했다. 이론적으로는 작은 컵 분량의 수소 연료만으로도 한 가정이 수백년 동안 쓸 수 있는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기 때문에 이번 실험 성과가 크게 주목받는다고 평가했다.
<로이터> 통신은 제니퍼 그랜홈 미국 에너지부 장관이 미국 동부 시각 13일 오전 10시 기자회견을 열어 이번 실험 성과를 발표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에너지부 대변인은 어떤 내용을 발표할지는 아직 정보가 없다고 말했다고 통신은 전했다.
로렌스 리버모어 연구소는 핵무기 개발 등 국가 안보와 관련된 연구에 집중하는 곳이며 이번 연구 성과는 안전한 핵무기 실험에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통신은 지적했다. 이와 함께 핵융합 발전소 건설을 추진하는 민간의 노력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빌 게이츠, 제프 베이조스 등 민간 투자자들은 핵융합 연구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고 있으며, 관련 업계는 지난해 28억달러 이상의 자금을 유치한 상태라고 통신은 전했다.
신기섭 선임기자
marish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