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인권법원, ‘말레이 항공 격추’ 러 책임 따지는 재판 연다

2014년 7월 우크라 반군 지역에서 격추
법원, “러시아 사법권 아래 지역서 발생”

2014년 7월 17일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상공을 지나다 미사일에 격추된 말레이시아 항공 17편(MH17)의 잔해를 사람들이 살펴보고 있다. 흐라보베/AP 연합뉴스

유럽인권법원이 2014년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에서 미사일에 격추된 말레이시아 민간 항공기 사건 등에 대해 러시아의 책임을 따지는 재판을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유럽인권법원은 25일(현지시각) 네덜란드와 우크라이나가 2014년 우크라이나에서 자행된 인권 침해 행위에 대해 러시아의 책임을 묻기 위해 제기한 소송 건을 받아들였다고 ＜에이피＞(AP) 통신이 보도했다. 유럽인권법원은 지난해 열린 청문회의 증거를 볼 때, 2014년 5월 11일부터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을 장악한 친러시아 분리독립 세력이 “러시아연방의 사법권” 아래 있음이 인정된다고 결정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러시아 정부가 분리독립 세력에 무기를 제공하고 그들의 요청에 따라 포격을 벌이는 등 “반군의 군사 전략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고 지적했다.

네덜란드와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한해 전인 지난 2021년 초 러시아를 유럽인권법원에 제소했었다. 이 법원은 1949년 설립된 국제기구인 ‘유럽평의회’ 소속으로, 1959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 설치됐다. 러시아는 1996년 유럽평의회에 가입했으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인 지난해 3월 15일 제명됐다. 하지만, 제명 이전에 벌어진 사건은 여전히 유럽인권법원에서 다룰 수 있다.

이번 결정에 따라 2014년 7월 17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로 향하던 말레이 항공 17편(MH17) 격추 사건과 관련한 러시아의 책임을 따지는 재판이 가능해졌다. 이 항공기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40㎞ 정도 떨어진 우크라이나 돈바스의 흐라보베에서 지대공 미사일에 맞아 추락했다. 이 사고로 승객 283명과 승무원 15명이 모두 숨졌다. 전체 승객 가운데 193명은 네덜란드 국적자였으며, 43명은 말레이시아 국적자였다. 네덜란드 주도의 국제 합동 조사단은 2016년 이 항공기가 러시아산 ‘부크 지대공 미사일’에 격추된 것으로 분석한 바 있다.

딜란 예실괴즈제제리우스 네덜란드 법무 장관은 소셜미디어에 쓴 글에서 “이번 결정은 말레이 항공 17편의 피해자들과 가족들을 위해 진실을 밝히고 정의를 구현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진전”이라고 평가했다. 보프커 후크스트라 외무 장관은 “298명의 희생자들을 위한 정의 구현에 우리가 지닌 힘 전부를 계속 쏟아부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와 별도로 네덜란드 법원은 지난해 11월 러시아인 두명과 우크라이나 반군 한명에 대한 궐석재판에서 살인죄 혐의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법원은 이와 함께 유족들에게 1600만유로(약 215억원) 이상의 배상금 지급을 결정했으나, 누가 배상금을 지급할지는 불분명한 상태라고 ＜에이피＞가 전했다.

신기섭 선임기자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