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심 밝힌 첫 촛불 영원속으로…
국제사면위원회(앰네스티 인터내셔널) 창설자인 피터 베넨슨이 25일 밤 영국 런던 서부 옥스퍼드의 존 래드클리프 병원에서 폐렴으로 숨졌다고 이 단체 브렌던 패디 대변인이 26일 발표했다. 향년 83.
러시아계 유대인 은행가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사회문제에 관심을 보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학창 시절에 나치 독일의 박해를 피해 탈출한 유대인 돕기 운동에도 열심이었고, 16살 때는 스페인 내전으로 부모를 잃은 아이들을 지원하는 캠페인을 처음 벌이면서 인권운동에 눈을 뜨게 됐다.
옥스퍼드대학에 진학해 역사를 공부한 그는 2차 세계대전 때 정보장교로 참전했다가 제대한 뒤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다. 1950년대 초반부터 인권변호사로 활동한 그가 앰네스티를 창설한 것은, 40살 때인 1961년 포르투갈 리스본의 한 카페에서 2명의 젊은이가 ‘자유’를 위해 건배를 했다는 이유로 체포돼 투옥된 사건이 계기가 됐다. 그는 영국 유력지 〈업저버〉에 ‘잊혀진 수감자들’이란 제목의 기고문을 보내 이들을 포함한 6명의 수감자들에 대한 국제적인 석방운동을 벌일 것을 제안했고, 이것이 국제앰네스티 운동의 시발점이 됐다.
애초 1년 기한의 한시적 조직으로 출발한 앰네스티는 세월이 흐를수록 활동폭을 넓히면서, 이제 세계적으로 180만명의 회원과 지지자를 둔 세계 최대 인권단체로 성장했다. 앰네스티가 처음 사용한 ‘양심수’라는 단어는 어느새 보통명사가 됐고, 철조망이 둘러쳐진 양초의 모습을 한 이 단체의 로고는 전세계 억압받는 양심수들에게 희망과 자유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1977년 앰네스티가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뒤 베넨슨은 “맨 처음 앰네스티의 이름으로 촛불을 켰을 때 나는 ‘어둠을 욕하기보다 촛불 하나 켜는 게 낫다’는 옛 중국의 속담을 떠올렸다”고 말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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