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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레바논에서 온 편지] “엄마, 천둥소리야?”

등록 2006-07-30 19:49수정 2006-07-30 22:37

림 핫다드(37)
림 핫다드(37)
시간을 거슬러 기억을 더듬는다. 울음소리, 근심, 공포, 전투기들, 목표물을 때리기 위해 도시 위로 날아드는 미사일의 그 끔찍한 소리들…. 곧이어 폭음이 귀를 울리고, 집 유리창이 깨져나간다. 16년 동안 계속돼 91년 끝난 레바논 내전 동안, 어린애였던 나는 엄마아빠 품으로 파고 들어 위로를 받곤 했다. 그렇지만 이번엔 그럴 수가 없다. 이번엔 내가 부모이고, 어린 두 아이가 내 품으로 달려온다. 그들의 얼굴엔 혼란스런 표정이 가득하다.

“불꽃놀이야!”, 갑작스런 폭격의 굉음이 집을 뒤흔들었을 때 나는 네살짜리 딸 야스민에게 이렇게 설명했다. 21개월 된 동생 알렉산더의 손을 꼭 붙잡고 있던 야스민은 기쁜 표정을 지었다. 야스민은 하늘의 불꽃놀이 섬광을 보려고 알렉산더를 창가로 데려갔다. 나와 남편은 텔레비전쪽으로 달려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기분으로 베이루트 새 공항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화면을 바라보았다.

또 한번의 폭발음이 들리면서 우리집 창문이 흔들렸다. 나는 아이들을 꼭 끌어안았다. 수많은 시아파들이 살고 있고, 헤즈볼라의 본부가 있는 베이루트 교외를 이스라엘이 포격하고 있었다. 그리고 곧 고속도로에 대한 폭격이 시작됐다.

나는 더이상 호기심 많은 야스민을 속이지 못했다. 그애는 이 소리가 불꽃놀이 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럼 천둥소리야? 곧 비가 오는거야?” 그애는 물었다.

여전히, 나는 그애에게 진실을 말하지 못했다. 내 어린 시절은 그런 폭격소리로 가득차 있었다. 마침내 그 끔찍한 폭격 소리를 잊어버릴 때까지 나는 몇년 동안 악몽을 꾸어야 했다. 내 아이들에게는 결코 이런 소리를 듣게하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던 젊은 시절이 기억난다. 그런데, 이제 내 어린 딸이 공포에 질린 채 나를 바라보고 있다.

기자인 내 남편은 취재를 위해 길을 떠났다. 나는 아이들을 내쪽으로 더 꼭 껴안았다. 폭격이 계속돼 우리는 밖으로 나갈 수조차 없었다.

갑자기, 우리가 포위됐다는 말이 들려왔다. 이스라엘 함정들이 레바논 해안선 전체에 배치돼, 화물선이 들어오지도 나가지도 못하게 막았다. 그러면서 그들은 시리아로 빠져나가는 도로들을 계속 폭격했다.

공포가 일었다. 친구들이 전화를 걸어와 빨리 슈퍼마켓에 가서 생필품들을 사둬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얼른 달려갔지만 이미 진열대는 거의 비어 있었다. 무엇을 사야할지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우선 가장 필요한 것은 분유와 기저귀였다. 다른 사람들도 똑같은 생각을 했나보다. 분유와 기저귀 진열대가 먼저 비어 있었다. 나는 이 슈퍼마켓, 저 슈퍼마켓을 헤매다니며 분유를 찾으러 애썼다. 그렇지만 이스라엘은 비옥한 베카계곡 지역에 있는 분유공장을 폭격해, 수천명의 아이들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우유 공급을 끊었다. 진열대에는 분유가 몇병밖에 남지 않았다. 나는 닥치는대로 분유를 샀지만 얼마 버틸 수 없으리란 것을 알았다.


밤새도록 폭격은 계속됐다. 베이루트항이 바라다 보이는 우리 집에서, 나는 공포에 질린 채 미사일이 항구에 떨어지는 것을 바라봤다.

나는 악몽에 빠졌고, 어떻게 깨어나야 할지도 몰랐다. 불과 3주 전만해도 우리는 야스민의 4번째 생일을 축하하고 있었다. 아이는 기쁜 표정으로 얼굴이 상기됐고, 손님들은 즐겁게 웃었다. 수천명의 관광객들이 레바논을 찾아오기 시작했었다.

이제 그들은 모두 빠져나갔다. 외국인들은 거의 남지 않았다. 폭격이 시작된 지 나흘이 지났을 때, 아이들과 나는 산악지대로 피신했다. 남편은 취재를 위해 폭격이 쏟아지는 남부에 남아 있다. 우리 머리 위로도 여전히 전투기들이 날아다니는 소리가 들리고, 때로는 창문이 깨져나간다. 여기도 안전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우리 상황이 나아질 수 있을지, 우리 가족이 언제 다시 만나게 될지도 알 수가 없다. 우리는 갑작스런 천둥소리를 뒤따를, 보이지 않는 비를 기다리며 여기 산 속에서 지내고 있다.

두 아이와 산악 피난지에서 림 핫다드

림 핫다드(37)는 레바논 일간지 <데일리스타>의 전직 기자다.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이 시작된 뒤 어린 두 아이를 데리고 레바논의 산악지대에서 힘겨운 피란생활을 하고 있다. ‘어머니’의 마음으로 글을 써달라는 <한겨레>의 요청을 받고, 글을 쓰기로 했다. 인터넷에 접근할 수 없어서, 먼길을 걸어 어렵게 팩시밀리를 찾아 29일 원고를 보내왔다. 사진도 따로 보내지 못해, 기자 시절 <한겨레21>에 기고할 때의 사진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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