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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박노해 시인 “지금 이 지구에는 아무도 없는 것만 같아요”

등록 2006-08-02 18:39수정 2006-08-03 08:34

박노해
박노해
박노해 시인의 레바논을 위한 외침

나 거기 서 있다

몸의 중심은 심장이 아니다
몸이 아플 때 아픈 곳이 중심이 된다
가족의 중심은 아빠가 아니다
아픈 사람이 가족의 중심이 된다

총구 앞에 인간의 존엄성이 짓밟히고
양심과 정의와 아이들이 학살되는 곳
이 순간 그곳이 세계의 중심이다

아 레바논이여!
팔레스타인이여!
홀로 화염 속에 떨고 있는 너


국경과 종교와 인종을 넘어
피에 젖은 그대 곁에
지금 나 여기 서 있다
지금 나 거기 서 있다

그칠 줄 모르고 비가 내립니다. 온몸이 젖은 사람들의 긴 눈물처럼.

그칠 줄 모르고 폭탄이 떨어집니다. 온몸이 피에 젖은 레바논의 통곡 앞에.

어제서야 레바논 친구들과 전화 통화가 이루어졌습니다.

자기는 아직 살아있다고. 레바논은 지금 숨이 죽어가고 있다고. 가족과 친구들 시신도 찾을 수 없고, 찾아도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상태라고. 사상자 절반이 아이들이고, 관도 없어 맨땅에 그냥 묻고 있다고. 레바논에는 이제 아이들도 없고. 꿈도 없고 감정도 없고 사랑도 없고, 끝없는 폭탄 덩어리의 저주뿐이라고.

그러면서 그 의지 강한 사람이 흐느끼기 시작했습니다. 폭음 이후의 적막, 베이루트의 적막, 강력한 폭탄보다 더 무서운 적막에 숨을 쉴 수 없다고.

“샤일 박(박 시인)이 예뻐하던 아이들도 폭격을 피할 수 없었어요. 그래도 샤리아, 무함마드, 자이납은 아직 살아 있어요. 임시 난민캠프로 옮겨진 아이들이 말했어요. ‘샤일 박은 우리를 잊지 않고 있을까요?’ 여기 레바논엔 지금 아무도 없는 것만 같아요. 지금 이 지구에는 아무도 없는 것만 같아요. 우릴 지켜보고, 귀 기울이고, 말해주는 사람이 사람이 아무도 아무도…"

“아이들 분유와 먹을 것이 필요해요. 약품도 식수도 공책도 볼펜도 지금 여긴 아무것도 아무것도…우릴 잊지 말아 주세요. 우릴 지켜봐 주시고, 우리와 함께 느껴주시고, 그리고 말해주세요…”

그리고 다시 통화가 되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 레바논 사람들에겐 우리의 눈과 귀와 입이 필요합니다.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다들 바쁘고 힘드시겠지만 외부와 고립되고 포위되어 이스라엘의 첨단 미사일과 폭탄에 죽어가고 있는 저 고독한 사람들과 함께해 주십시오.

우리 개인 개인은 미약하기 그지없고, 평화는 어린 올리브나무처럼 연약하지만, 그래도 우리가 자기 안의 선함과 의로움을 함께 모아낸다면. 세계는 조금씩 더 좋은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레바논의 아픔과 슬픔을 함께 나눠 주십시오.

2006년 7월 28일 새벽

박노해 드립니다.



이 글은 제3 세계의 민중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 온 시인 박노해씨가 레바논 사태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을 담아 보내 온 것입니다. 그는 지난해 7월 레바논을 방문한 바 있습니다. 그가 상임이사로 있는 ‘나눔문화’ 소속 대학생과 연구원들은 <레바논에 평화를!>(Save Lebanon!)이라는 거리 캠페인을 벌이는 한편, 레바논을 돕기 모금 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성금 모금 계좌는 우리은행 1005-301-075535 나눔문화(레바논). 문의 02-734-1977. www.nanu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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