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럽고 돌보는 여성성이 더욱 중요해져
‘치마 입은 남자’에서 ‘치마 입은 엄마’로….
요즘 국제무대에 등장하는 여성 정치인들의 새로운 리더십 스타일이다. ‘치마 입은 남자’가 남성다운 강인함을 내세우는 여성 정치인을 일컫는다면, ‘치아 입은 엄마’는 여성 그 자체로 승부하는 새로운 유형의 여성 정치인을 일컫는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세골렌 루아얄 프랑스 사회당 대통령 후보, 낸시 펠로시 차기 미국 하원의장 등이 이 부류에 속한다.
‘철의 여인’으로 불린 영국의 마거릿 대처 전 총리는 대표적인 ‘치마 입은 남자’ 스타일이다. 그는 아르헨티나와의 포클랜드 전쟁, 광부노조의 파업사태 등 격변의 사건들 속에서 남성보다 더 남성같은 리더십을 보여준 여성 정치인이다.
1980~90년대 서남아시아에 여성 지도자가 많았지만, 대부분 남편이나 아버지의 후광을 입는 이들이었다. 코라손 아키노 필리핀 대통령은 남편, 베나지르 부토 파키스칸 총리와 찬드리카 쿠마라퉁가 스리랑카 총리는 각각 아버지의 후광으로 지도자에 올랐다. 남편이나 아버지를 등에 업고 지도자에 오른 만큼, 오롯이 여성이기 보다는 ‘아내’와 ‘딸’이라는 남성의 그늘이 덧씌워져 있었다. 국내에서 7·9·12대 국회의원을 지냈고, 97년 대선에도 출마했던 남장 정치인 김옥선 의원에게도 남장은 생존의 전략이었다.
하지만, 이제 여자라는 사실 그 자체가 최대 경쟁력이 되는 현실이 다가왔다. 여론조사기관 입소스 설문조사 결과, 프랑스인 응답자의 37%가 루아얄 의원을 지지한 이유로 “여성이기 때문”이라고 응답했다. 루아얄도 선거 기간 내내 “네 아이의 엄마”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환경장관, 가족장관 등을 지낸 경력을 바탕으로 어린이·가족·교육의 가치를 강조했다. 루아얄의 상대 진영은 선거운동 기간 “아이는 누가 키우냐”며 조롱을 보냈지만, 이는 오히려 역풍을 맞았다.
낸시 펠로시 차기 미 하원의장도 중간선거에서 다섯 아이를 키운 엄마라는 점을 내세웠다. 그가 “빵을 함께 굽는 전형적인 엄마”라거나, 그의 선거전략이 “부엌에서 짜였다”는 등의 평가는 그에게 후한 점수를 더했다. 칠레의 미첼 바첼렛 대통령은 ‘남녀 동수 내각’을 내걸고 당선됐다. 그는 두번의 이혼을 겪고 혼자 세 아이를 키웠다.
‘엄마’ 정치인들의 약진은 여성들이 그 자체의 능력과 경쟁력으로 최고 자리에 오르는 시대가 도래했다는 평가를 낳고 있다. 서울시립대 김민정 교수(국제정치)는 “과거에는 ‘엄마’라는 사실이 정치에서 버려야할 가치였지만, 이제는 엄마처럼 부드럽고, 돌보고, 이해하는 여성성이 더 중요한 가치로 각광받고 있다”며 “전 세계적으로 정치 리더십에 대한 요구가 바뀌고 있다”고 평가했다. 오유석 여성정치세력민주연대 대표는 “일상속 생활정치에 대한 관심이 여성의 진출을 가속화하고 있다”며 “탄탄한 실력이 뒷받침된 여성 지도자들이 평화·인권·협업정치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 가고 있다”고 말했다.
김순배 기자 marco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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