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은행 125개 계좌 1300만달러 은닉
미 상원보고서…금융사가 유치 앞장도 집권 당시 살인·납치·고문 등 인권을 유린한 혐의로 가택연금된 칠레의 은퇴한 군사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89)의 미국 안 비밀계좌가 무더기로 발견됐다. 미 상원 국토안보 및 정무위원회에 딸린 조사위원회는 16일 피노체트가 가명으로 미국 안 은행과 외국지점에 비밀계좌를 개설해 막대한 자금을 돈세탁해 보유해 왔다는 내용을 뼈대로 한 보고서를 내놨다. 이런 사실은 위원회가 2003년 2월 칼 레빈 상원의원(민주당) 등의 요청으로 테러방지법의 돈세탁 금지조항과 관련해 은행권을 추가 조사하는 과정에서 드러났다. 보고서를 보면, 피노체트는 시티은행에 개설한 63개 계좌를 포함해 워싱턴의 리그스은행, 아메리카은행 등 유수의 은행에 모두 125개의 비밀계좌를 개설했으며, 자신의 가족과 측근 명의의 계좌를 활용해 모두 1300만달러 가량을 비밀리에 관리해 왔다. 이 과정에서 그는 ‘다니엘 로페즈’ ‘아우구스토 우가르테’ 등 10개의 가명을 사용했으며, 계좌 개설에 필요한 여권까지 위조해 사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피노체트가 28개의 비밀계좌를 개설한 리그스은행은 1979년부터 지난해까지 25년 동안 피노체트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으며, 은행 고위인사들이 여러차례 칠레 현지를 방문하거나 편지를 보내 피노체트 예금유치에 적극 나섰던 것으로 드러났다. 리그스은행은 지난달 25일 피노체트의 비자금 관리에 연루된 것과 관련해 제기된 소송을 무마하기 위해 칠레 민주화 운동 희생자 지원기금으로 900만달러를 내놓기로 합의한 바 있다. 또 시티은행은 피노체트와 그의 가족에게 모두 300만달러를 대출해 주기도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보고서는 피노체트가 시티은행 계좌를 활용해 비자금을 미국뿐 아니라 전세계 각지로 움직여 국제적인 비밀계좌망을 형성하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시티은행 쪽은 “피노체트가 가명으로 개설한 계좌는 거의 10년 전 폐쇄했다”고 주장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전했다. 세계적인 인권단체 휴언라이츠워치는 이날 성명을 내어 “피노체트의 숨겨진 돈에 대한 새로운 증거가 밝혀질 때마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옛말을 실감케 한다”며 “이번 상원의 보고서는 피노체트가 칠레의 민주화 세력을 탄압한 것뿐 아니라, 미국 은행의 도움을 받아 지속적으로 자신을 지지했던 세력까지 속이고 (군 예산을 빼돌려) 사리사욕을 채웠다는 점을 확인시켜 준다”고 강조했다. 1973년 선거를 통해 당선된 사회주의 정부인 살바도르 아옌데 정권을 미국의 지원 아래 군사쿠데타로 무너뜨리고 정권을 장악한 피노체트는 1990년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1998년까지 군 통수권을 내놓지 않았다. 그는 재임기간에 이른바 ‘콘도르 작전’이란 이름으로 자행된 민주화 세력을 무자비하게 탄압했으며, 이 과정에서 모두 3천여명이 숨지고 2만8천여명이 고문을 당한 것으로 칠레 당국은 보고 있다. 지난 1월 초 칠레 대법원의 확정판결에 따라 가택연금된 그는 현재 산티아고 서부 교외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미 상원보고서…금융사가 유치 앞장도 집권 당시 살인·납치·고문 등 인권을 유린한 혐의로 가택연금된 칠레의 은퇴한 군사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89)의 미국 안 비밀계좌가 무더기로 발견됐다. 미 상원 국토안보 및 정무위원회에 딸린 조사위원회는 16일 피노체트가 가명으로 미국 안 은행과 외국지점에 비밀계좌를 개설해 막대한 자금을 돈세탁해 보유해 왔다는 내용을 뼈대로 한 보고서를 내놨다. 이런 사실은 위원회가 2003년 2월 칼 레빈 상원의원(민주당) 등의 요청으로 테러방지법의 돈세탁 금지조항과 관련해 은행권을 추가 조사하는 과정에서 드러났다. 보고서를 보면, 피노체트는 시티은행에 개설한 63개 계좌를 포함해 워싱턴의 리그스은행, 아메리카은행 등 유수의 은행에 모두 125개의 비밀계좌를 개설했으며, 자신의 가족과 측근 명의의 계좌를 활용해 모두 1300만달러 가량을 비밀리에 관리해 왔다. 이 과정에서 그는 ‘다니엘 로페즈’ ‘아우구스토 우가르테’ 등 10개의 가명을 사용했으며, 계좌 개설에 필요한 여권까지 위조해 사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피노체트가 28개의 비밀계좌를 개설한 리그스은행은 1979년부터 지난해까지 25년 동안 피노체트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으며, 은행 고위인사들이 여러차례 칠레 현지를 방문하거나 편지를 보내 피노체트 예금유치에 적극 나섰던 것으로 드러났다. 리그스은행은 지난달 25일 피노체트의 비자금 관리에 연루된 것과 관련해 제기된 소송을 무마하기 위해 칠레 민주화 운동 희생자 지원기금으로 900만달러를 내놓기로 합의한 바 있다. 또 시티은행은 피노체트와 그의 가족에게 모두 300만달러를 대출해 주기도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보고서는 피노체트가 시티은행 계좌를 활용해 비자금을 미국뿐 아니라 전세계 각지로 움직여 국제적인 비밀계좌망을 형성하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시티은행 쪽은 “피노체트가 가명으로 개설한 계좌는 거의 10년 전 폐쇄했다”고 주장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전했다. 세계적인 인권단체 휴언라이츠워치는 이날 성명을 내어 “피노체트의 숨겨진 돈에 대한 새로운 증거가 밝혀질 때마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옛말을 실감케 한다”며 “이번 상원의 보고서는 피노체트가 칠레의 민주화 세력을 탄압한 것뿐 아니라, 미국 은행의 도움을 받아 지속적으로 자신을 지지했던 세력까지 속이고 (군 예산을 빼돌려) 사리사욕을 채웠다는 점을 확인시켜 준다”고 강조했다. 1973년 선거를 통해 당선된 사회주의 정부인 살바도르 아옌데 정권을 미국의 지원 아래 군사쿠데타로 무너뜨리고 정권을 장악한 피노체트는 1990년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1998년까지 군 통수권을 내놓지 않았다. 그는 재임기간에 이른바 ‘콘도르 작전’이란 이름으로 자행된 민주화 세력을 무자비하게 탄압했으며, 이 과정에서 모두 3천여명이 숨지고 2만8천여명이 고문을 당한 것으로 칠레 당국은 보고 있다. 지난 1월 초 칠레 대법원의 확정판결에 따라 가택연금된 그는 현재 산티아고 서부 교외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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