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합의문에서 처음으로 핵 폐기의 과정으로 ‘불능화’(disabling)라는 개념이 나온다. ‘폐쇄’(shut down)를 넘어서는 것으로 과거 제네바 합의 ‘동결’(freeze)이란 개념보다 훨씬 강력한 돌이킬 수 없는 단계의 조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우선 세 단어는 모두 북한이 궁극적으로 핵 프로그램을 폐기하기 위해 반드시 취해야 할 조처를 지칭한다. 그러나 실질 내용은 다르다. 북한 핵 폐기 과정에서 첫 단계인 가동 중단은 핵물질, 즉 원자로 내 플루토늄의 생산을 중단하는 것이다. 북한이 이를 실천하기 위해 취할 조처의 준거점은 영변 원자로의 ‘동결’이다. 동결은 플루토늄을 만들어 내는 원자로를 현 상태에서 멈추게 하는 것이다. 즉, 스위치 하나만 끄면 사실상 동결이 이뤄진다. 핵시설 자체를 해체하거나 핵무기를 못쓰도록 폐기하는 등의 조처와는 거리가 멀다. 제네바 합의의 경우 폐기까지 적어도 5~6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했다. 이 때문에 이번 6자 회담에서 한·미 양국은 초기부터 ‘동결’에 부정적이었다. 그래서 ‘폐쇄’라는 개념을 택했다. 동결이 핵시설에 대한 접근과 수리를 보장한다면, 폐쇄는 그러한 접근도 불가능하도록 한다는 개념이다. 사실상 입구를 막아버려 기술자들의 접근조차 막는다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폐쇄는 수개월 내 폐기 절차에 돌입할 수 있다는 구상을 전제하고 나온 것이다. 조지 부시 미국 행정부가 그간 강조해온 핵 폐기 3대 원칙 중 하나인 ‘되돌이킬 수 없는’(irreversible)에 접근하는 것이다.
‘불능화’는 이 폐쇄보다도 더 나아간, 높은 단계의 조처다. 핵시설을 다시는 가동할 수 없도록 영구적으로 폐쇄하고 원자로 핵심 장치인 노심을 아예 제거하는 등 원자로를 못쓰게 하는 기술적 조처를 포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무현 대통령의 스페인 순방에 동행 중인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은 “핵폐기는 완전히 못쓰게 하는 것이지만, 불능화는 장비 등이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입구를 막은 뒤(폐쇄) 그 안의 장비가 기능할 수 없도록 한다는 것이다. 연합뉴스, 마드리드/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