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년간 채굴보장 석유법…엑손모빌등 시기 저울질
‘1달러로 1배럴 생산’ 막대한 이윤 “사실상 미국법”
‘1달러로 1배럴 생산’ 막대한 이윤 “사실상 미국법”
이라크 내각이 종파·민족별 인구에 따라 지방당국에 석유수입을 배분하는 석유법을 승인하면서, 석유메이저들이 본격적으로 이라크의 ‘검은 노다지’를 퍼올릴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이 법안이 외국 자본의 석유자원 개발 참여를 허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막대한 국부를 전리품으로 바친다’는 논란도 일어 이달 이라크 의회에서 이 법안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주목된다.
지난달 26일 내각을 통과한 석유법을 두고 서구 언론들은 시아·수니파와 쿠르드족에게 공평하게 석유 판매수입을 배분해 종파분쟁 해소를 도울 것이라는 기대를 전하고 있다. 누리 알말리키 이라크 총리는 새로운 이라크 건설의 “또다른 초석”이라고 말했고, 백악관도 이라크 상황 개선을 위한 “핵심 요체”라고 반겼다. 석유법은 이라크 18개주에 석유수입을 인구비율에 따라 나눠주도록 규정했다.
그러나 법안의 또 다른 뼈대인 외국 자본의 참여 조건이 하나둘 알려지자, 미국이 석유자원 약탈을 위해 이라크를 침공했다는 게 입증됐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라크는 1972년 석유자원 국유화를 실시해 외국 자본 진출을 막아왔다. 새 법안은 △외국 업체에 최장 30여년간 채굴권 부여 △외국 업체의 개발·운송·정유·서비스업 전반 참여 △개발 결정권을 쥔 연방석유·가스위원회에 석유업체 경영진 참여 등을 담았다.
미국 연구단체인 ‘포린 폴리시 인 포커스’의 분석가 라에드 자라르 등은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이 법안이 유례가 없을 정도로 석유메이저들한테 유리한 내용을 담았다며 “이라크 주권과 재정 안정성, 국가 통합을 해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들은 이라크 정부가 석유메이저들한테 큰 이윤을 보장하면서도 기술이전과 투자 유치, 현지인 고용 등 일반적인 요구조건조차 달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영국 석유탐사업체인 페트럴리소시스의 존 틸링 회장은 최근 일간 <인디펜던트>와의 인터뷰에서 “이라크에서는 1달러면 석유 1배럴을 생산할 수 있다”며 “유가가 배럴당 60달러라고 한다면, (이라크 진출은) 훌륭한 사업”이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이라크 정부가 석유메이저들한테 받을 몫은 생산량의 20%를 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이 신문은 보도했다.
미국의 엑손모빌, 영국의 비피(BP) 등은 이라크 치안상황을 봐가며 진출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 세계 3위인 1120억배럴의 확인 석유매장량을 가진 이라크는 전쟁 전 하루 280만배럴을 생산했지만, 현재는 200만배럴로 줄었다. 80여개의 개발된 유전과 70여개의 미개발 유전을 보유한 이라크의 석유는 부존층이 지표에서 가깝고 질이 좋다.
홍콩 <아주시보>는 미국과 국제통화기금(IMF), 석유메이저들이 작성에 간여한 이라크 석유법은 애초 아랍어가 아닌 영문으로 쓰여졌다며 “사실상 미국 법”이라고 평가했다. 지난해 석유메이저들한테 법안 초안이 회람될 때에도 이라크 의원들한테는 내용이 전해지지 않았다.
일부 이라크 의원들과 석유노조는 “국익에 맞지 않는다”며 반대 세력을 모으고 있다. ‘검은 황금’을 손쉽게 얻으려는 미·영 등 서방국가와 석유메이저들의 의도가 먹혀들지는 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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