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대의 해일을 일으킨 진도 9.0 지진의 진앙은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아체주의 앞바다였다. 아체주는 가장 처참하게 파괴됐지만, 반군과 정부군이 오랫동안 내전을 벌여 외부와 단절된데다 수도 자카르타에서 비행기로 3시간이나 걸리는 오지여서 그동안 참상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해일이 덮친 지 1주일 뒤, 해안가의 아체주 주도 반다아체에서 물이 빠지기 시작하면서 무시무시한 현장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로이터통신>은 2일 보슬비가 계속 내리는 가운데 진흙으로 뒤범벅된 이 도시에서 주검들은 뒤엉킨 채 널려 있고 강에도 주검들이 떠다니고 있으며, 기진맥진한 군인과 구호요원들은 축구장 다섯배 넓이의 땅에 산더미처럼 잔해들을 쌓아놓고 24시간 내내 태우고 있다고 전했다. <연합뉴스>도 이날 현지취재 기사에서 주검들은 거적으로 덮인 채 길바닥에 짐승처럼 방치돼 적도의 찌는 듯한 무더위로 빠르게 부패하면서 피고름을 바닥에 흘리고 있다며, 반다아체는 ‘유령의 도시’로 변해버렸다고 보도했다. 내전과 계엄령을 피해 다른 지역으로 삶의 터전을 옮겼던 희생자 가족들은 고향을 지키던 부모, 형제를 애타게 찾아, 피해 현장 곳곳에 가족들의 인상착의와 자신의 연락처를 적은 메모지를 붙여놓고 난민촌을 헤매다니고 있다. 17살 난 아들 시아와루딘을 찾고 있는 아드난 이브라힘(62)은 <로이터>에 “7일 동안 난민촌과 모스크 등 모든 곳을 다 헤매다녔다. 그 애는 컴퓨터를 잘하는 영리한 아이였다. 이제 나에게는 모든 것이 다 끝났다”며 절망했다. 냄새를 맡지 않으려고 점퍼를 머리에 뒤집어쓰고 복구작업을 하던 불도저 운전기사 주르한(23)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치워야 할지 모르겠다. 모든 것이 다 뒤엉켜 있다. 얼마나 많은 주검을 봤는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인구 40만명의 도시에서 이미 3만명 이상이 숨진 것으로 확인된 이 도시에서 주검은 신원 확인 절차도 제대로 거치지 않고 짐승처럼 무참하게 땅에 파묻히고 있다. 도심 외곽에서는 정부군이 총을 겨눈 채 군용트럭들이 수거해 온 비닐에 싼 주검들을 거대한 구덩이에 아무렇게나 내던진 뒤 무차별로 집단매장하고 있다. 주민들은 <연합뉴스>에 “계엄령 치하에서 정부군이 하는 일에 불만을 표시하거나 항의하는 것은 죽음을 자초하는 짓”이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한 정부군 관계자는 “지금까지 방치된 주검들은 대부분 일가족이 몰사했을 가능성이 크고, 부패해 눈으로는 식별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전염병이 퍼질 가능성이 커서 하루빨리 묻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죽음의 도시를 벗어나기 위해 수천명이 한꺼번에 공항으로 몰려들고 있으나 비행기를 탈 수 있는 것은 극소수뿐이다. 빠져나가기를 포기한 이들은 미군과 싱가포르군 헬기에 실려온 구호물자를 하나라도 더 받기 위해 달음질치고 있다. 박민희 기자, 반다아체/연합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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