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민의 희망’ 옛말
비숙련 노당자 소득과 일자리 줄어
비숙련 노당자 소득과 일자리 줄어
1990년대에 북미자유무역협정(나프타)으로 시장이 열리고, 청바지 공장에서 뒷주머니를 달던 멕시코 노동자 에르메네질도 플로레스의 삶에도 볕이 들었다. 미국으로부터의 주문 폭주로 2001년 주급은 68달러(약 6만3천원)로 거의 두 배가 됐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열심히 안 하면 공장 문을 닫고 중앙아메리카로 내려간다”는 공장장의 말이 들리더니, 새 기계 도입으로 쓸모가 없게 된 그는 지난달 900달러의 퇴직금을 받고 쫓겨났다.
<월스트리트저널>은 24일 10년 전만 해도 개발도상국 빈민들에게 희망을 불어넣던 무역·투자 개방 등의 세계화 조처가 빈부격차를 벌리며 사회 갈등을 키워가고 있다고 보도했다. 1970년대 이후 기업들이 외국으로 공장을 옮기면서 선진국에서 비숙련 노동자들의 일자리가 사라져 양극화를 불렀다는 게 일반적인 해석이지만, 세계화로 개발도상국의 빈-부, 숙련-비숙련 노동의 양극화도 심화된다는 것이다.
가장 단적인 사례는 중국에서 소득불평등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가 개혁·개방 전 0.29에서 2004년 0.47로 급증한 것이다. 지난해 세계은행 조사에서는 1970~80년대에 ‘경제자유화’를 단행한 중남미 12개국 가운데 9개국에서 소득불평등이 심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경제자유화 이후 소득수준 하위 20% 노동자들의 소득이 페루(-42%), 콜롬비아(-24%), 멕시코(-24%)에선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신문은 세계적 차원의 경쟁에서 새로운 생산방식에 적응하는 숙련노동자와, 그렇지 못한 비숙련노동자의 임금과 고용기회에서 차이가 벌어지는 게 1차적 원인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개발도상국에 진출한 다국적기업이 고임금으로 고급 인력을 흡수하는 것도 원인으로 꼽혔다. 예일대의 피넬로피 코지아누 골드버그 교수는 “세계화는 (개발도상국의) 비숙련 노동자들에게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됐지만, 현실은 그 반대라는 증거가 훨씬 많다”고 말했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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