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전 뒤 관계 소원…블레어 등 친미 정치인 낙마
사르코지·메르켈 등 중·러 맞서 다시 ‘대미외교’ 힘써
사르코지·메르켈 등 중·러 맞서 다시 ‘대미외교’ 힘써
2003년 미군과 동맹군들의 이라크 침공 이후, 유럽의 정치 엘리트들한테 ‘친미’와 ‘친 부시’는 몰락과 동의어가 됐다. 2004년 호세 마리아 아스나르 전 스페인 총리, 2006년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이탈리아 총리, 2007년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가 ‘유탄’을 맞고 총리관저를 떠났다.
2001년 9·11테러 뒤 미국에 동정적이던 유럽인들은 ‘대량살상무기 색출’이라는 명분이 거짓으로 드러나고, 미 중앙정보국(CIA)이 테러 용의자들을 유럽에서 무단 납치한 일이 탄로나자 돌아섰다. 미국에 대한 호감도는 절반 가까이 떨어졌다. 양쪽 관계는 2차대전 이후 최악으로 볼 만한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런데 지난달 극적 반전이 일어났다. 친미적 발언을 해대던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미국에서 여름휴가를 보내며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 일가와 다정한 장면을 연출했다. 〈뉴스위크〉 최신호는 이라크전의 가장 강력한 반대국 중 하나이던 프랑스 대통령의 제스처는 미국과 유럽의 협조노선을 뜻하는 범대서양주의의 복원을 뜻한다고 풀이했다. 프랑스와 함께 유럽연합을 이끄는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부시 대통령의 ‘단짝’이 돼버렸다. 유럽 정치지도자들이 대미 관계 복원에 적극적인 것은 일차적으로 이라크전이 여론의 관심권에서 멀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또 메르켈 독일 총리가 ‘대서양자유무역지대’ 창설을 주창한 데서 보듯, 양 쪽의 경제적·전략적 이해관계는 쉽게 저버리기 어렵다. 범대서양자유무역지대를 선전하는 이들은 중국과 인도에 맞서 서구가 단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러시아의 부활과 신냉전 분위기도 빼놓을 수 없는 요인이다.
미국도 유럽에 관해서는 일방주의를 자제하며 접근하고 있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올해 유럽지역을 12만8천㎞나 여행하며 정성을 쏟았다. 대니얼 프리드 국무부 유럽담당 차관보는 “라이스 장관의 집중적 순방과 전략적 접근이 분명한 효과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뉴스위크〉는 유럽 정치인들이 반미 여론이 여전한데도 미국에 접근하는 데는 부시 대통령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상황판단도 작용한다고 보도했다. 미국 대선주자들도 ‘미국의 품’으로 돌아온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에 대한 덕담을 빠트리지 않는다. 프랑스 헐뜯기에 앞장서던 미트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는 “프랑스가 우리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반겼다.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은 “(사르코지는) 미국의 원칙을 갖고 있고, 이들 원칙을 프랑스에서 실행하며 경제성장을 이루려는 인물”로 평가했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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