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법원이 시민 저항으로 쫓겨난 수하르토(86) 전 대통령을 심판하라는 요구는 외면하고 도리어 그에게 거액의 돈과 명예를 안겨주는 판결을 내렸다.
인도네시아 대법원은 수하르토가 미국 시사주간 <타임>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1억600만달러(약 995억원)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고 <데페아>(dpa) 통신 등이 10일 보도했다. 누르하디 대법원 대변인은 “수하르토의 청구를 받아들이고 (원고패소 판결을 내린) 지방법원과 항소법원 판결을 파기한다”고 밝혔다. 그는 “(<타임> 보도는) 부적절하고 공평하지 못하며, 인도네시아 대통령을 역임한 원고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말했다. 법원이 <타임>의 보도내용 중 무엇이 허위라고 판단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타임>은 1999년 5월, 11개국 특파원의 4개월에 걸친 탐사보도로 수하르토가 퇴임 직후 150억달러를 스위스 은행에서 오스트리아 은행으로 이체시켰다고 보도했다. 1967년 대통령 권한대행에 오른 수하르토는 부정축재와 인권침해를 일삼다 1998년 권좌에서 내려왔다. <타임>의 변호인은 판결 소식에 “<타임>은 언론 윤리를 준수했으며, 이번 판결은 퇴보”라고 말했다. 수하르토나 인도네시아 법원이 배상액을 받아낼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수하르토를 법정에 세우라는 요구가 끊이지 않았지만, 검찰은 지난해 그의 건강 악화를 이유로 기소를 거부했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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