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20년 폴란드 남부의 작은 도시 바도비체에서 재봉사인 아버지와 교사인 어머니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본명은 카롤 요제프 보이티야. 엄격한 가톨릭 집안에서 자란 그는 문학과 철학에 심취해 ‘세상 변화에 둔감한’ 청년기를 보내다, 1차 세계대전으로 폴란드가 독일군에 점령돼 나치의 박해가 본격화되자 신학도의 길을 걷게 된다. 1946년 사제서품을 받은 그는 폴란드가 공산화 뒤에도 대학에서 신학을 가르치며 대주교(64년)와 추기경(67년)을 거쳐, 1978년 심장마비로 34일 만에 임기를 마친 요한 바오로 1세의 뒤를 이어 교황으로 선출됐다. 455년 만에 등장한 비이탈리아인 교황이자, 역대 최연소(58살) 교황이었다. 그의 재위 기간은 정확히 26년 5개월15일. 2000년 가톨릭 역사상 264명의 교황 가운데 3번째 장수 기록이다. 그는 20세기 역사적 격변기에 최장수 교황으로 재임하면서 전세계에 걸쳐 수많은 족적을 남겼다. 교황으로는 처음 1986년 로마의 유대교 회당을, 2001년에는 시리아 다마스쿠스의 이슬람 사원을 각각 방문했다. 그는 교황 즉위 이듬해(1978년)에 고국인 폴란드를 방문해 바웬사의 연대노조운동을 지지하는가 하면, 미하일 고르바초프 옛 소련 공산당 서기장을 만나고(1989년) 공산국가인 쿠바를 방문하는 등 ‘정치적’ 활동에도 적극적이었다. 수난도 적지 않아 1981년 총격을 받고 대수술 끝에 목숨을 건졌고, 이듬해에는 스페인 전통주의자들의 습격을 받기도 했다. 그는 재위 기간 동안 남극을 제외한 모든 대륙 124개 국가와 지역을 방문하는 등 왕성한 활동력을 보였다. 재위 기간 중 그가 여행한 거리는 총 124만7613km로, 지구에서 달까지 거리의 3.2배에 이르며, 전세계에서 2만 차례 이상 연설을 했다. 1995년에는 필리핀 마닐라에서 400만명이 모인 사상 최대 규모의 대중 미사를 집전하기도 했다. 생전에 1600여명의 전세계 정치 지도자들을 만났는데, 이 가운데 국가원수가 776명, 총리가 246명이었다. 그는 또한 시를 쓰고, 스키와 카누, 등산을 즐기며, 찰리 채플린 흉내를 내는 유머러스한 한 인간이기도 했다. 김회승 기자 hon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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